이상설의 간찰, 1907년, 25.5×2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글씨에 인격 또는 내면이 담겨 있어서 글씨를 보면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글씨로 가장 훌륭한 인물을 고르라면 독립운동가 이상설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 2009년 ‘필적은 말한다’를 출간하면서 표지 디자이너가 조형적인 아름다움만 보고 이상설의 글씨를 선택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일제 강점 초기 독립지사 탄압의 주범인 아카시 모토지로 헌병대사령관의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안중근은 배일 목적의 교육에 종사하던 이상설을 찾아가 문하생이 됐고 이상설을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았다. 보고서 말미에는 ‘조선통감부 촉탁경시 사카이의 신문’에서 안중근이 이상설을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포부가 매우 크며 세계 대세에 통해 동양의 시국을 간파하고 있다. 만인이 모여도 상설에는 미치지 못한다. 용량이 크고 사리에 통하는 대인물로서 대신(大臣)의 그릇이 됨을 잃지 않았다.”
이상설의 글씨가 왜 최고이며 인품이 훌륭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선생의 글씨는 유려하고 힘이 넘친다. 이는 두뇌 활동이 활발하고 내면의 에너지가 강함을 의미한다. 글씨 크기가 큰 것은 용기와 사회성이 있다는 뜻이다. 가로선이 긴 것은 참을성이 있음을, 마지막 부분이 길게 늘어지는 것은 큰 힘과 활력을 말해준다. 행의 간격이 넓은 것은 남을 배려할 줄 안다는 뜻이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