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를 말레이계 무슬림의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1965년 이렇게 주장하며 말레이시아 연방정부로부터 싱가포르 자치정부를 축출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 당시 초선 의원이었던 마하티르 모하맛이었다. 비통한 눈물을 흘리며 싱가포르를 이끌고 독립했던 리콴유 총리는 반세기 만에 이 작은 도시국가를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나라로 도약시켰다. 북-미 정상회담 후보지로 확정될 만큼.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간 말레이시아 총리였던 마하티르가 15년의 공백을 딛고 9일(현지 시간)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전선(BN)을 누르고 승리했다. 61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내고 다시 총리가 된 마하티르의 나이는 93세, 세계 최고령 지도자 등극이다. 마하티르 역시 리콴유처럼 수출 주도의 경제정책으로 말레이시아의 근대화를 이끈 ‘국부(國父)’라는 평과 함께 반대파로부터는 ‘개발독재자’라는 엇갈리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마하티르를 불러낸 것은 나집 라작 현 총리와 정권 수뇌부의 부정부패다. 그는 정권교체에 성공하면 동성애 혐의로 수감 중인 야권의 실질적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에게 자리를 넘긴다고 공약을 하고 총선에 출마해 최고령 지도자의 지위를 언제까지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사법당국은 ‘무혐의’라며 수사를 종결했지만 나랏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정권을 국민은 용서하지 않았다.
▷‘아시아적 가치’를 강조한 리콴유처럼 ‘아시아만의, 아시아의 길’을 중시한 마하티르가 재집권하면서 말레이시아의 반(反)세계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말레이시아 통화 링깃은 선물시장에서 5% 가까이 폭락했다. 외환 투기를 허용하지 않는 그의 성향에 해외투자자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1998년 외환위기 때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개혁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독자적 회생 프로그램을 가동해 말레이시아 경제를 회복시킨 그다. 93세 노장의 복귀가 몰고 올 동아시아의 격랑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