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와인 발상지 조지아 찾아 농가 빌려 내추럴와인 생산 시작 年 1500병 만들어 지인들과 즐겨
양태규 전 몬트리올 총영사가 “첨가물이 없어 색, 맛, 향이 다르다”며 자신이 만든 와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50년 가까이 외국 생활을 했지만 와인은 늘 자신이 없었어요. 언젠가 와인을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4월과 이달 9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양태규 전 몬트리올 총영사(81)를 만났다. 첫 만남에선 와인 강의를 들었고 두 번째엔 그가 만든 와인을 마셨다. “내가 만든 와인이 자랑스럽다. 와인 맛이 어떠냐”고 묻는 노신사의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번졌다. 마치 와인과 사랑에 빠진 20대 청년 같았다.
그는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은 내추럴와인으로 제3의 인생을 열었다. 외교관으로 32년, 해외 대학 교수로 13년간 일한 뒤 2009년 이제 좀 쉬자 싶어 한국에 들어왔다. 그런데 펄펄 끓는 피를 잠재울 수 없었다. 일흔둘, 하고 싶은 것도 수두룩했고 묵히기 아까운 능력도 많았다.
그때부터 ‘독한’ 와인공부가 시작됐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 그는 7개 언어를 한다. 이런 외국어 능력을 바탕으로 온라인에서 크고 작은 와인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학구파 기질을 살려 각국의 와인자료를 보다 보니 ‘조지아(옛 그루지야)’라는 이름이 나왔다.
“조지아는 와인의 발상지예요. 황토 항아리인 크베브리(Qvevri)에서 포도를 숙성시켜 만들죠. 천년에 걸쳐 내려온 기술로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기술보다 조지아의 양조방식이 더 뛰어나다고 칭송했어요.”
조지아의 내추럴와인에 강한 호기심이 일어 2010년 3개월간 와이너리 현지답사를 다녔다. 농가를 빌려 크베브리 5개를 묻고 포도 종을 골라 같은 해 말 첫 와인을 만났다. ‘초심자의 행운’이 따라와 기가 막힌 와인이 나왔다.
그는 포도는 직접 재배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발품을 팔아 좋은 테루아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최고의 포도를 매입한다. 처음엔 700병 정도 만들다가 최근엔 자신감이 붙어서 1500병 정도로 양을 늘렸다. 한국에 올 때마다 조금씩 들여와 지인들과 나눠 마신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