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필 전용홀 음향설계 맡은 세계적 전문가 나카지마 다테오
나카지마 다테오 씨는 “음향설계는 사람이 핵심이다. 인종, 문화 등 여러 요소가 어떻게 섞이는지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애럽 제공
올해 4월 경기 부천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사무실. 박영민 상임지휘자와 세계적 음향설계자인 나카지마 다테오 씨(47)가 머리를 맞댔다. 부천필하모닉 전용홀의 설계를 맡은 나카지마 씨가 부천필 측의 요구사항을 듣는 자리였다.
음악가의 추상적인 요구에 설계자가 기술적 답변을 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박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색깔을 파악하기 위해 집요하게 음악 관련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미적 기준이 다른 것처럼 공연장도 각각 그 나름대로의 소리(tone)와 특성(identity)이 있어요. 공연장이 추구하는 소리를 이해하기 위해 설계 전 고객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카지마 다테오 씨가 설계한 덴마크 올보르의 ‘북유틀란트 하우스 오브 뮤직’(위)과 캐나다 퀘벡주의 ‘몬트리올 심포니 홀’. 외신 캡처
공간의 규모, 습도, 온도, 벽면과 바닥의 재질…. 음향설계는 수십 가지 변수를 조율해 원하는 음색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객석과 형태를 정하고, 흡음과 반사를 고려해 마감 재료를 선택하고, 잔향과 초기음 등을 고려해 정교하게 설계를 가다듬는다. 그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최신 기술을 토대로 설계해도 결과는 늘 예상을 비켜간다”며 “이것이 음향설계의 마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래 음악도였다. 캐나다 토론토왕립음악원을 졸업한 뒤 독일 일본 네덜란드 등에서 바이올리니스트와 지휘자로 활동했다. 연주자나 무대 관련 일을 하다가 음향설계로 진로를 바꾸는 이들이 적잖지만 지휘자 출신은 드물다. 그는 “무대에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한 점이 큰 도움이 된다. 지금도 가끔 설계한 무대에서 지휘를 하며 설계가 어떻게 구현됐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999년 세계적 음향회사인 아르텍(2013년 애럽에 합병)의 창립자인 러셀 존슨과 만나면서부터. 지휘자인 그에게 러셀은 “공연장의 소리는 연주자, 악기, 관객, 공간이 어우러져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건넸고, 그는 공간과 교감하며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점에 매료돼 아르텍에 입사했다. 음반, 디지털, 영상 등 클래식과 만나는 길이 다채로워지는 시대, 공연장은 어떤 경쟁력을 갖춰야 할까.
“공연장은 웅장함, 생동감, 따뜻함 등 단순한 소리 이상을 경험하는 공간입니다. 제 손끝에서 탄생한 공연장이 그 지역의 정체성(identity)을 잘 담아내길 바랍니다. 공연장을 방문한 이들이 자연스레 그 지역의 정서에 녹아들고, 그곳만의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요.”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