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국회 특권 내려놓기 어디까지 왔나 제 머리 못깎는 국회의원
#2 국회의원들이 막말, 명예훼손, 허위 사실 유포 등을 했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한 ‘모욕행위에 대한 국회 내부 윤리심사 강화 및 명확하고 구체적인 윤리심사 기준 마련’ 작업도 여전히 국회에서 심사 중이다. 국회의원의 과도한 ‘면책 특권 남용’을 막고 책임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지만 이를 제도화하려는 국회의 노력은 뜨뜻미지근한 것이다.
국회의원은 ‘선출된 귀족’으로 불린다. 세습 귀족 못지않게 특권이 많다. 그러나 20대 국회가 임기(2016년 5월 30일∼2020년 5월 29일) 시작 때부터 강조해 온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작업은 임기 전반기 종료(2018년 5월 30일)를 앞둔 11일 현재 크게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임기 시작 직후인 2016년 7∼10월 의장 직속으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위원장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까지 구성해 구체적인 특권 관련 항목과 개선 방안을 연구했다. 특히 위원회는 국회의원들의 높은 임금 등 ‘돈’과 관련된 특권 줄이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회 사무처의 최근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대 국회가 특권으로 분류해 이른바 ‘내려놓기’를 추진한 항목은 총 29건. 이 중 조금이라도 개선이 이뤄진 건 절반에도 못 미치는 14건에 불과했다(표 참조). 분과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정치학)는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클 때는 국회도 특권을 줄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결국 스스로 자기 개혁에 나서는 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의 특권 줄이기와 관련해서 개선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항목에는 ‘돈’과 관련된 게 적지 않다. 국회의원들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거나, 투명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회의원 보수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제정 못지않게 개선이 안 되고 있는 사항 중 하나로는 ‘특수활동비 축소 및 개선’이 꼽힌다. 국회 교섭단체, 위원회, 의원외교 등 이른바 특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용도로 지급되는 특수활동비는 국회 예산 중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대표적인 항목이다. 사용 명세를 증빙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국회의 ‘2018년도 세입세출예산 각목명세서’에 따르면 올해 배정된 특수활동비는 약 62억7200만 원이다. 세부 항목별로는 △입법활동 지원 15억5200만 원 △국정감사 및 조사 4억7630만 원 △위원회 운영지원 15억4972만 원 △특별위 운영지원 6억6694만 원 △의원외교 5억5337만 원 등이다. 국회의장, 교섭단체 원내대표, 상임위원장 등이 나눠 쓰는 쌈짓돈이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실제로 2015년 참여연대는 국회의 관련 정보공개 청구 거부 방침에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이달 3일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고 최종 결정했다. 국회의 불투명한 특수활동비 운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특수활동비 명세를 공개하면 국회 고도의 정치적 행위가 노출돼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 ‘행정부 감시 업무를 담당하는 수행자, 방법, 시기 등에 관한 정보가 노출되면 국회의 행정부 감시 역할이 위축된다’며 거부했던 국회는 어떤 방식으로 명세를 공개할지 뒤늦게 고심하고 있다.
불투명한 정치자금이 오가고, 국회의원과 이해관계가 얽힌 인사와 기관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출판기념회 관련 제도 개선 방안도 지지부진하다. 출판기념회에서 금품 모금과 제공을 금지하고, 행사 개최 여부를 의무적으로 신고하게 하는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관련 제도 개선’ 내용을 담은 정치자금법 개정안 역시 처리되지 않고 있다.
○ ‘상징적 특권’ 내려놓기도 지지부진
국회의원의 ‘상징적 특권’을 줄이는 작업 중에서도 속도가 안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국회의원 배지 폐지’가 꼽힌다. 현재 국회의원들은 99%의 도금된 금배지(단가 3만5000원 정도)를 달고 다닌다. 국회의원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지만 오랜 기간 국회의원들의 권위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심리적 특권의 상징물이란 비판도 받았다. 이에 따라 배지 대신 국회의원 신분증을 마련해 신분 표시 및 확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국민의 대표에게 배지 정도는 허용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고, 배지를 없앨 경우 각종 행사에서 의전 효율성 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국회 내 ‘의원동산’ 같은 시설의 명칭에서 ‘의원’이란 단어를 삭제하는 비교적 간단한 특권 내려놓기 역시 여전히 심사 중인 항목이다. 국민의 기관이며 누구나 방문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취지에서 추진되는 특권 내려놓기다.
○ 진짜 특권은 따로 있다?
한 전직 의원은 “국회의원들의 진짜 특권은 잠재적 경쟁자에 비해 몇 바퀴 앞선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현행법은 각 선거구에 정당 사무실을 둘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국회의원은 지역구 민원 청취 명분으로 자기 이름을 내걸고 사무실을 차릴 수 있다. 또 일상적으로 후원금도 모금할 수 있다. 또 국회 보좌진 일부를 편법으로 지역구 챙기기에 활용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선되자마자 4년 임기 내내 사실상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적절성에 대한 논의조차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는 결국 법과 제도를 만들거나 바꿔야 하는 문제고, 이를 담당하는 기관이 국회라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많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법이나 제도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하는 건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독립적인 국회 관리·감독 조직을 만들어 국회의원 특권 줄이기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령, 영국 국회의원들의 봉급을 결정하는 독립기구인 의회윤리청(Independent Parliamentary Standards Authority·IPSA) 같은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IPSA는 2009년 영국 국회의원들의 대규모 공금 유용 스캔들이 터지며 설립된 기관이다. 의원들의 봉급을 결정하는 과정과 업무를 국회 밖 독립기관이 담당하도록 해 독립성과 공정성 등을 최대한 강조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 변호사는 “우리 국회가 스스로 개혁에 나서는 건 여러모로 힘들다는 게 입증됐다”며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개혁을 하려면 결국 독립 기관의 힘을 쓰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