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송평인]진경준과 ‘거부된 정의’

입력 | 2018-05-12 03:00:00


백아(伯牙)라는 거문고 명인에게는 종자기(鐘子期)라는 친구가 있었다. 백아가 높은 산에 오르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켜면 종자기는 ‘태산이 눈앞에 우뚝 솟은 느낌’이라고 말했고, 도도히 흐르는 강을 떠올리면서 켜면 ‘큰 강이 눈앞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한탄하며 거문고에 손을 대지 않았다.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이라 부르는 것은 이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다.

▷김정주 NXC 대표로부터 넥슨 주식을 받은 진경준 전 검사장에 대해 어제 파기환송심에서 뇌물 무죄가 확정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30년 지기’인 두 사람을 보통 친구 사이를 넘어선 ‘지음’이라고 부르며 그 정도로 친한 사이에서 “진 전 검사장이 검사의 직무와 관련해 김 대표에게 금전을 제공받았다면 개별적 직무와 대가 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보험성 뇌물’은 인정하지 않았다.

▷진 전 검사장은 남들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었던 비상장 주식을 1만 주나 매입할 기회를 제공받고 그 매입마저 제 돈이 아니라 김 대표 돈으로 했다. 실은 항소심조차도 주식 매입 기회 자체는 뇌물로 보지 않고 매입 자금만 뇌물로 봤으니 법정의 정의는 애초 일반인의 정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법원은 매입 자금마저 공소시효 1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했다.

▷진 전 검사장은 주식 매입 자금으로 김 대표에게 4억2500만 원을 빌린다고 해놓고 갚지도 않았다. 주식은 대박이 터져 11년 만에 팔아치웠을 때 차익이 126억 원에 이르렀다. 진 전 검사장은 대한항공을 압박해 처남에게 일감을 몰아준 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긴 했지만 126억 원은 고스란히 손에 쥐었다. 두 사람은 장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불상사에 대비할 만큼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친구였는지는 몰라도 그 관계는 결코 지음이라고 할 수 없고 그 판결도 정의라고 할 수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