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여론 왜곡 3제 네이버, 페이스북, 트위터로 한 사람이 모두 세 번 ‘동의’ 가능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으로 정국이 들끓던 4월 중순. 회사원 박모 씨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로 주식투자에서 큰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 박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국민청원) 게시판에 들어가 ‘삼성증권 시스템 규제와 공매도 금지’ 청원에 동참했다. 박씨는 평소 사용하던 네이버 아이디로 접속해 ‘동의’했다. 그런데 박씨의 지인이 페이스북으로 접속하면 한 번 더 ‘동의’할 수 있다고 얘기해줬다. 박씨는 설마 될까 싶었지만 페이스북 계정을 활용해 같은 청원에 ‘동의’하니 놀랍게도 또 한 번 되더라는 것.
회사원 허모 씨도 같은 경험을 했다. 허씨는 ‘미세먼지’ 관련 청원에 참여했다.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매캐한 미세먼지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정부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청원 동참’을 권유했다. 그런데 한 동료가 “빨리 20만 명을 채우고 싶으면 다른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접속해 동의 수를 올릴 수 있다”고 귀띔해줬다고 한다. 그 결과 허씨는 네이버, 페이스북, 트위터 등 모두 세 번에 걸쳐 ‘동의’를 할 수 있었다고. 허씨는 “내가 요구하는 청원이 빨리 20만 명을 넘겨 답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똑같은 청원에 여러 번 참여했지만 찜찜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드루킹 댓글 사건이다 뭐다 해서 여론조작 문제가 사회문제화됐는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 사람이 여러 번 참여 가능한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 [동아DB]
‘중복 동의’ 문제로 카카오톡 사용 중지
당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네이버와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 모두 4개의 소셜계정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다 3월 이후부터 청와대는 일부 이용자의 부적절한 로그인 정황이 발견됐다며, 소셜 로그인 서비스 중 카카오톡 연결을 잠정 중단했다. 현재는 카카오톡 이외에 네이버,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청원 참여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3개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현재도 누구나 1인 3표 행사가 가능한 상황이다. 책임 있는 당국자의 답변을 듣는 데 필수 요건인 20만 명 청원에 실제로는 3개의 소셜계정을 가진 7만 명이 참여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셈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정부가 선보인 대국민 직접 소통창구로,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히트 상품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8월 17일 처음 문을 연 이후 9개월도 안 돼 18만 건 넘는 청원이 쏟아졌다. 국민 관심이 높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여론 왜곡 시비를 차단하려면 한 사람이 여러 번 참여하지 않도록 좀 더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국민소통실 담당자는 “국민 누구나 편리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소셜미디어 계정으로 청와대 청원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있다”며 “하나의 계정으로 중복 참여하는 것은 막고 있지만, 개인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같은 사람이 다른 계정으로 참여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걸러낼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