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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82세, 나보다 젊은 고인의 상가에 가도 될까?”

입력 | 2018-05-13 16:52:00

고령화 시대의 조문 예법







올해 우리 나이로 팔십 하고도 둘입니다. 젊은 사람들 눈에는 ‘꼬부랑 노인’이겠지만 막상 ‘100세 시대’를 살다 보니 아직 스스로 그렇게 늙었단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교회나 경로당 등 이런저런 모임에서 맺는 사회적 관계도 젊은이들 못지않지요.

그런데 딱 하나, 요즘 마음에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바로 ‘상가(喪家) 조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그 자리에 내가 가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까운 지인이 돌아가셨다면 찾아뵙는 게 도리지만 팔십이 넘으니 막상 가도 유가족이나 다른 조문객들이 불편해하는 것 같습디다. 특히 천수를 누리다 보니 나보다 젊은 고인의 상가에 가는 게 영 곤혹스럽습니다.

동년배 고인의 문상도 껄끄럽긴 마찬가지예요. 가보면 대부분의 조문객이 ‘호상(好喪)’이라며 웃고 떠들어 대는데 내 마음은 당최 불편합니다. 내 친구, 내 또래 지인의 죽음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어요? 그런 자리에 다녀오면 몇날 며칠 우울해집니다.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한 친구는 “칠십 넘어서는 아예 장례식장 다니는 걸 끊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습니까. 슬픈 일 당하면 위로하는 게 사람 구실 하는 거 아닙니까. 고령화 시대의 조문 예법, 어찌해야 좋을까요.

예부터 한국문화에는 ‘지인의 경사(慶事)는 지나쳐도 애사(哀事)는 꼭 챙겨야 한다’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게 ‘장례 조문’이다. 조문을 통해 고인을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관계의 기본예법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평생을 믿어 온 이 예법을 두고 노인이 되면 딜레마에 빠진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김계순 씨(85·여)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은 지 벌써 10년이 됐다”고 말했다. “언젠가부터 친한 친구나 친지의 장례식도 참석하지 않게 됩디다. 나 같은 노인네가 남의 빈소에 가 있는 모습이 뭐 좋겠나 싶더라고요. 가는 게 예의가 아니라 안 가는 게 예의인 것 같기도 하고….”


문제는 안 가도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수종(가명·73) 씨는 “나이가 든다고 마음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가까운 사람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소중한 사람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은 노인이 돼도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김 씨는 “아직까지 큰 고민 없이 문상을 가는데 언젠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아끼는 이의 문상조차 꺼리게 된다면 참 서글플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한국 나이로 백수(白壽·99세)를 맞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역시 노년기에 접어들며 비슷한 고민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몇 가지 조문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나보다 어린 사람이 먼저 장례를 치르는 경우라면 아주 가까운 사이를 제외하고 가급적 문상을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겨진 가족들이 날 보면 ‘이렇게 건강하신 분도 있는데…’ 하며 더 큰 상실감을 느끼지 않겠어요? 그럼에도 내가 아끼던 제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 가보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어요. 그럴 땐 다른 제자들이나 조문객들이 없을 늦은 밤에 갔죠. 밤에도 조문객이 있을 것 같으면 모두가 참석할 수 있게 공개된 장례 예배에 가서 마음을 전했어요.” 김 교수는 “그래도 90세가 넘고 나니 문상은 안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라며 “4, 5년 전부터는 아들을 대신 보내 조문한 뒤 나중에 내가 위로 전화를 한다”고 말했다.

고령화로 인해 상주도 노인인 경우가 많은 만큼 상주를 배려하는 예법을 새롭게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모친상을 치른 황병석 씨(71)는 “장남이라 쉬지도 못하고 3일장을 치르는데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다”며 “60대에 아버님 상을 치를 때와는 또 다르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무릎이 좋지 않다 보니 하루 종일 조문객과 맞절을 하는 우리 장례 예법이 큰 부담이었다”며 “고령화 시대엔 맞절보다 목례 정도가 서로에게 좋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 일부 장례식장은 고령의 상주와 조문객들을 감안해 식장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중앙대병원 장례식장은 분향소와 접객실을 좌식이 아닌 모두 입식으로 리모델링했다. 이 병원 장례식장 관계자는 “척추와 고관절이 불편한 노인 조문객을 위한 배려”라며 “신발을 벗지 않고 묵념으로 조문하고, 식사도 의자에 앉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도 지난해 말 입식 빈소를 도입했다. 이 병원 장례식장의 장무 운영팀장은 “입식 빈소의 선호도가 높아 계속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08년 리모델링 당시 국내에서 처음으로 입식 빈소를 도입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노수경 사무장은 “고인이 80대 이상인 빈소 비율이 2008년 30.6%에서 지난해 47%로 빠르게 늘고 있다”며 “사망자가 고령이면 조문객도 고령이 많다 보니 갈수록 입식 빈소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와 달리 분향소 안에 상주와 가족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두는 것이나 빈소의 밤샘 문화가 사라진 것도 고령화로 나타난 변화 중 하나다.

 임우선기자 imsun@donga.com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
 
▼ 올해 백수(白壽)를 맞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노년기 조문 예법


1. 아주 가까운 사람의 장례를 제외하고 나보다 젊은 사람의 장례에는 가지 않는다. 자칫 유족에게 더 큰 상실감을 줄 수 있다.

2. 그럼에도 꼭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 조문객이 적은 시간을 택해 간다. 그래야 조문객들이 덜 불편해 한다.

3. 꼭 가야할 자리가 아니라면 가급적 아들을 통해 조문하고 전화로 위로를 전한다.

4. ‘호상(好喪)’이라는 표현을 조심해서 쓴다. 아무리 나이가 많은 이의 장례라도 가족과 친구들에겐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