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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Special Report]‘호박에 줄 긋는’ 변화로는 턱도 없다

입력 | 2018-05-14 03:00:00

조직문화 개선작업이 실패하는 이유와 대안 제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기업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문화 개선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직급 체계를 단순화하고 사내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는 등의 조치가 대표적이다. 또 회의 문화 개선, 야근 방지를 위한 강제 소등 등 다양한 조직문화 개선 프로젝트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 시도만으로 기업 문화를 성공적으로 바꾼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경영 전문 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248호(2018년 5월 1일자)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조직문화 개선 작업이 왜 실패하고 있는지 분석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 왜 갑자기 조직문화를 바꾸려 하는가

기업들이 호칭 파괴나 보고 체계 개선 등을 시도하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유연성과 창의성을 갖춘 조직을 만들고 싶어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 과거 ‘기계적 효율성’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던 많은 글로벌 기업이 최근 성장 정체를 경험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구글, 아마존 등 혁신 기업들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시장의 판을 뒤흔든 혁신 기업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고, 그 비결을 조직문화에서 찾고 있다.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유지한 기업들이 파괴적 혁신을 일궈나갔다고 본 것이다.

○ 조직문화 개선 전담팀 설치 등 대대적 노력

많은 기업은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선진 기업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거나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전담 팀을 설치하거나 전문 업체의 컨설팅을 받기도 한다. ‘칭찬합시다’ 같은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도 조직문화는 요지부동인 경우가 많다. 이런 시도는 몸에 열이 날 때 발열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일단 몸에 찬물을 끼얹고 보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직문화는 기업의 경영 전략 및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따라서 몇몇 제도를 바꾸고 교육을 실시해도 전략과 시스템이 예전 그대로면 어떤 성과도 낼 수 없다. 결국 회사의 전략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효율성 중심으로 가혹한 성과주의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직원의 만족도 향상’이나 ‘즐거움 추구’를 위한 몇몇 복지 정책을 도입한다고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 조직의 전략과 인사 제도를 포함한 시스템을 바꿔야 조직문화가 움직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조직 내부적으로 성공이 무엇인지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지금까지 성공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던 재무성과 외에 학습이나 윤리 등 비재무적인 성공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중으로 함께 논의해야 한다. 또 리더가 중심이 돼 기업의 전략과 리더십, 문화를 고민할 수 있는 ‘수평적 논의 그룹’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조직의 다양한 의견이 이 그룹을 통해 최고경영진에 전달될 수 있게 해야 한다.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조직문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부활을 이끌고 있는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조직문화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기업이었던 MS는 2000년대 들어 구글, 애플 등에 밀리며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보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MS의 ‘야만적 문화’ 때문이었다. 한때 MS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이른바 ‘스택 랭킹(Stack Ranking)’ 시스템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오히려 조직에 해를 끼친 것. 이 시스템은 성과를 기준으로 직원들을 서열화해 차등 보상을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 제도로 인해 직원들은 내부 경쟁에 사로잡혀 당시 새롭게 부상하는 혁신 기업들과 경쟁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구성원은 조직 내 유능한 인재를 오히려 배척하거나 함께 일하기를 꺼렸고, 리더들은 내부 권력 투쟁에 사로잡혀 줄 세우기를 조장했다. 결국 리더와 구성원 간 신뢰가 무너졌고 비협력적인 조직문화가 확산됐다.

나델라는 2014년 취임과 함께 자신의 첫 번째 사명을 ‘문화를 바꾸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를 위해 그는 매주 한 번씩 CEO를 포함한 고위임원 회의를 열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또 조직의 성공을 재정의했다. 그가 새롭게 정의한 회사의 성공은 ‘성장하는 사고·태도(growth mindset)’였다. 당장 재무적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행동을 한 직원을 격려하고 보상한 것이다. 과거 지나친 경쟁을 유도했던 스택 랭킹 시스템을 폐지했고, 구성원 누구라도 의견을 말할 수 있으며 다른 직원의 주장을 경청하는 문화도 확산시켰다.

나델라는 “성공은 손익계산서상의 수치가 아닌, 개인이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부임한 지 4년 만에 MS는 클라우드 서비스 부문 점유율 1위 기업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오랫동안 잃어버린 기업 고유의 ‘영혼’을 되찾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재 인사조직·커뮤니케이션 전략 컨설턴트 path_work@naver.com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