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파타 두 번째 체크포인트 앞에 있는 산행 고도 표시판. 해발 4200m 고도를 가파르게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왕용 씨 제공
잉카트레킹에서 산행 둘째 날은 설렘보다는 걱정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첫날 캠핑을 마친 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일행들이 던진 말이 “오늘이 데드 패스(Dad pass) 넘는 날이지?” 일행들을 긴장에 떨게 한 그 패스의 정식 명칭은 ‘데드우먼스 패스(Dead Woman’s pass)‘다. 멀리서 보면 마치 죽은 여인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름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듯 그곳을 오를 때에는 산깨나 올라봤다는 사람들도 죽을듯한 고통을 호소하기에, 줄여서 그냥 데드 패스라고 부른다.
보통 고산 등반을 할 때 하루 평균 600m 고도를 올리는데, 데드 패스를 오를 때에는 하루 만에 1300m가 상승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등반을 앞둔 사람들이 한왕용 대장에게 걱정 섞인 질문들을 쏟아낸다. “제 건강 상태면 혹시 낙오하는 거 아닌가요?” “여기서 낙오한 사람들 많아요?” 늘 그렇듯 한 대장의 답은 명료하다. “제가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제가 낙오할 판입니다.” 그 한마디로 말문이 막힌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숨이 차오른다. 30분에 한번씩 10분을 쉬면서 천천히 등반해도 호흡이 힘들다. 한왕용 씨 제공
걷는 것조차 힘든 이곳에 잉카인들은 그 무거운 돌을 나르고 다듬어서 이토록 웅장한 마을을 건설했다. 잉카인들의 정신은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사에 남을 문명을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위대함에 박수를 보내고 그 얼을 배우고자 오늘 이 산에 오른다. 존재 자체로 희망이기에 세계인들이 잉카트레킹을 최고로 꼽고 대기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
해발 4200m 데드우먼스 패스를 드디어 오른다. 정상에 오르는 순간 놀랍게도 가쁜 숨이 가벼워진다. 한왕용 씨 제공
인생은 크게 12마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 10마디는 고통의 상황이고 2마디 정도가 축복의 상황이다. 10번의 고통이 찾아들면 행복한 순간은 2번 정도 된다. 그러니 고통의 상황을 마주치면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OK” “참고 견디고 가자!” 하며 말이다. 어쩌겠는가. 신이 내게 준 숙제인 것을. 그러다가 가끔 축복의 상황을 만나면 “Thank you” “누리고 즐기자” 하면 된다. 축복이 있다는 게 어딘가. 어떤 이는 인생의 초반에 축복을 맛보고 어떤 이는 인생의 후반에 축복을 만나게 된다고 확신하다. 내 인생에 봄날은 언젠가는 온다. 그래서 늘 마음속으로 되새긴다. 인생은 “OK” 아니면 “Thank you”라고….
데드패스를 넘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 대장에게 이야기했다. 한 대장 왈,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넘었네요. 왜 이리 두통이 심한 건지.” 그저 두통만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넘었단다. 도인(道人)은 인생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산다.
홍창진 신부(경기도 광명성당 주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