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비핵화 협상]북핵 폐기 장소 오크리지 지목
2004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테네시주 오크리지의 국립연구소를 방문해 리비아에서 운반된 핵무기 부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동아일보DB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모든 핵무기를 제거하고 해체해 미 테네시주 오크리지(국립연구소)로 가져가겠다”며 북-미 간에 논의되고 있는 비핵화 시나리오의 일단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는 비핵화 절차가 완전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길 원한다. 그것은 불가역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미국 본토로 핵을 옮겨서 폐기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 핵시설과 핵무기로 나눠 ‘투트랙 폐기’ 볼턴 보좌관은 13일(현지 시간) ABC방송에 출연해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비핵화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처음 제시했다. 그동안 그는 ‘리비아식 모델 적용’ ‘선(先)핵폐기, 후(後)보상’ 등의 원론적 방법론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핵 폐기 장소 등을 언급한 적은 없다.
볼턴 보좌관은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PVID)’에 대해 “(핵무기를) 테네시주의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그것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을 제거하는 것, 탄도미사일 문제를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감안하면 북한의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 등 ‘핵 부동산’은 북한 현지에서 폭파 등을 통한 폐기 과정을 거치고, 완성된 핵물질이나 핵탄두 등 ‘핵 동산’은 미국에 들여와 확실하게 폐기하는 ‘투트랙 북핵 폐기’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구체적인 북핵 폐기 방법까지 공개하는 것은 9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대표로 한 ‘북핵 협상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비핵화 방법과 보상을 놓고 꽤 의견을 좁혔기에 가능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이 잇따라 비핵화 시 내어줄 경제 보상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도 결국 김정은에게 트럼프식 비핵화 이행 서류에 서명하라고 촉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볼턴 보좌관은 북한의 ‘PVID’ 이행과 관련해 “보상 혜택이 흘러들어가기 전에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 북한, 미국에 핵무기 내어줄까 미국이 북한에 체제 보장과 경제제재 해제를 원하면 “핵무기를 넘기라”고 요구했지만 북한이 이를 그냥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는 관측이 아직은 더 많다. 북한이 여섯 번의 실험을 거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까지 거의 완성한 핵능력을 고스란히 포기할 만큼 아직 미국과 신뢰관계가 쌓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리비아나 카자흐스탄은 비핵화 선언 후 보유했던 핵을 오크리지로 옮겼지만, 구소련의 핵을 해체한 것은 미국이 아닌 러시아였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의 핵능력 관련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 우방국으로 핵무기를 이관하고, 해체 과정에 자신들이 참관하길 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트럼프-김정은식 ‘비핵화 접근법’을 과거 잣대로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북한은 하루빨리 제재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미국은 일괄타결을 강조하며 양측이 ‘속도전’에는 일단 합의한 상황. 이에 평양에 있는 핵무기가 자체 비행이 아닌 미군 수송기에 실려 직선거리로 1만1136km 떨어진 오크리지에 도착하는 모습이 그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도 “실제 핵무기 해체는 미국이 할 것이고 다른 나라들의 도움도 아마 받을 것”이라며 미국 주도의 속도감 있는 폐기 가능성을 비쳤다. 또 그가 “(핵과) 탄도미사일 의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고, 생화학 무기도 살펴봐야 한다”며 ‘차등’을 둔 것도 우선 핵과 미사일 폐기에 집중해 속도를 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IAEA나 제3국이 폐기를 주도하면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면서 “미국은 핵을 가져와 직접 폐기하니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고, 북한은 ‘당신들이 다 가져갔으니 통 크게 보상하라’고 요구할 수 있어 ‘윈윈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황인찬 hic@donga.com·손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