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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리비아 핵물질 가져와 보관… 냉전시대엔 美 핵무기 개발 본거지

입력 | 2018-05-15 03:00:00

볼턴이 언급한 오크리지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 핵무기를 옮길 지역으로 특정한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핵물질 및 핵개발 장비 이관이 이뤄진 곳이다. 이른바 미국이 주도해 온 비핵화 프로세스의 ‘종착역’ 격이다.

미 국방부는 소련 해체 이후 카자흐스탄 내 우스티카메노고르스크 창고에 남은 고농축우라늄(HEU)을 1994년 초 수송기를 이용해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로 옮겼다. ‘사파이어 작전’이란 이름으로 미 중앙정보국(CIA) 국무부 에너지부 등 주요 부처가 모두 동원된 극비 작전이었다. 창고엔 HEU 600kg가량이 있었다.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위력 15kt·1kt은 TNT 1000t의 위력) 10여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Y-12(국가안보단지)로도 불리는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는 리비아 비핵화 과정에도 등장한다. 2004년 리비아가 비핵화를 선언한 뒤 핵무기 설계도, 원심분리기, 핵물질, 탄도미사일 핵심 부품 등이 모두 이곳으로 옮겨졌다. 그 규모는 25t에 달했다.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는 2005년 리비아에서 확보한 핵물질 ‘6불화우라늄(UF6)’을 분석해 UF6의 출처가 북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내기도 했다.

오크리지는 2000년대 이후 비핵화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냉전 시절엔 핵무기 개발의 상징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1942년 시작된 미국의 핵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무대 중 하나가 바로 오크리지였다.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는 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목적으로 1943년 설립됐다. 당시 핵무기 설계는 뉴멕시코주 사막에 위치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가, 플루토늄 등 핵물질 생산작업은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및 워싱턴 핸퍼드 내 연구소 등에서 진행됐다. 이 프로젝트로 생산된 원자폭탄 ‘리틀보이’(위력 15kt)와 ‘팻맨’(20kt)은 1945년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강타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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