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오랜 기간 비핵화 협상을 진행했던 미국 국무부의 전직 고위 관료들이 한 목소리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비관론을 내놨다.
싱크탱크인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원 주최로 1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전직 관리들은 북한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신을 쏟아냈다.
1994년 북미 간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 측의 수석대표를 지낸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대해 “정치적인 허튼소리 더미(political pile of crap)”라며 “북한으로부터 무엇을 갖게 될 것인지에 대해 국민과 의회, 국제사회를 속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거짓말로 비핵화를 했다고 주장하고, 트럼프 정부는 이를 인정해주면서 세계를 속이는 ‘정치적 타협’을 할 가능성을 경계한 것이다. 그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핵무기 개수와 플루토늄 무게를 정확히 신고해야 하지만 북한은 거짓신고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에는 절대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핵실험장에 있는 갱도들은 다시 굴착할 수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역적인 것이 아니다”며 “북한이 핵실험을 계속하고자 더 많은 갱도를 굴착하기로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6자회담 수석대표)도 “과거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늘 검증단계에서 실패해왔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검증을 허용하고, 공개되지 않은 시설은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했다”며 “북한은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비핵화 로드맵을 내놓기를 꺼릴 것으로 보이지만 반드시 합의문에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모든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2005년 9·19 공동선언을 이행할 지도 의문”이라고도 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북핵 문제를 다뤘던 데이비드 러셀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한은 핵무기를 팔거나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미정상회담에서 핵동결을 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또 “핵무기를 완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가 필요 없게 됐고, 이에 따라 북부 핵실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쳤다는 김 위원장의 과거 발언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