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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로 만들고 화장실 고치고… 휠체어 타고도 즐기는 여행”

입력 | 2018-05-16 03:00:00

[충전 코리아 2018, 국내로 떠나요]<7>점점 늘어나는 ‘열린 관광지’




강원 강릉시 정동진 모래시계공원은 2016년 ‘열린 관광지’로 선정돼 장애인 화장실과 휠체어경사로, 전용주차장 등을 갖췄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거동이 불편한 저에게 여행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죠.”

다리가 불편해 전동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권다희 씨(45)는 올해 초 드디어 꿈에 그리던 여행을 떠났다. 한국관광공사가 기획한 ‘열린 관광지’ 체험 여행인 ‘나눔여행’에는 권 씨를 비롯한 장애인 여행객과 보호자 2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1박 2일 동안의 여행에서 강원 정선군 삼탄아트마인, 강릉시 오죽헌과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 등을 방문했다. 삼탄아트마인은 폐광시설을 문화예술단지로 재생한 곳이다. 지난해 ‘열린 관광지’로 선정돼 휠체어 장애인과 노약자 등 관광 취약계층을 위해 시설을 개·보수했다.

권 씨는 “전동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전용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강원도까지 가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고령자도 때로 여행을 즐기고 싶지만 현실적인 제약 탓에 집 밖을 벗어나는 것조차 힘들다”며 “복지 시설을 갖춘 열린 관광지가 더욱 늘어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장애물 없는 관광지 100곳 만든다

‘열린 관광지’는 문재인 정부의 국책 사업 중 하나다. 장애인과 고령자, 영·유아를 동반한 국민 누구나 불편함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기존 관광지에 경사로와 교통약자 전용 주차장, 화장실 등 시설물을 마련하는 사업이다.

열린 관광지를 필요로 하는 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0%가 넘는다. 2015년 말 기준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인구는 250만 명,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662만 명, 0∼4세 영·유아는 230만 명이다.

정부는 이들을 위해 2015년부터 ‘무장애 관광지’를 매년 6, 7곳 선정했다. 지역 관광지에 관광 취약계층을 위한 인프라 설치를 희망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에 응모하면 정부가 심사를 통해 대상 관광지를 선정하고 지원하는 형식이다. 지난해까지 전남 순천시 순천만 자연생태공원, 경북 경주시 보문관광단지, 경기 용인시 한국민속촌, 강원 강릉시 정동진 모래시계공원, 제주 서귀포시 천지연폭포 등 총 17곳에 교통약자를 위한 시설이 설치됐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지난해 열린 관광지를 대폭 확대한다고 밝혔다. 올해 4월에는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온천, 충남 부여군 궁남지 등 12곳을 선정했다. 정부는 2022년까지 열린 관광지를 100개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열린 관광지 조성과 함께 무장애 관광 추천코스 발굴, 장애인·어르신을 초청한 시범 관광 같은 다양한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 미흡한 시설·교통수단은 숙제

지난해 관광공사는 2016년 조성한 열린 관광지를 방문한 507명의 장애인, 고령자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만족한다’는 응답은 48.7%,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은 19.1%로 절반 이상이 긍정적으로 답했다. 또 73.1%가 ‘다시 방문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남아있는 숙제도 많다. 이들이 열린 관광지를 이용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한 것은 관광지까지 갈 수 있는 정기적 이동 수단의 부재였다. 공사 조사결과 열린 관광지 방문 관광객이 이용한 교통수단은 자가용이 49.8%, 전세 버스가 34.4%였고 대중교통은 12.3%에 불과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나 노인은 특수 리프팅 차량이 없으면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권다희 씨는 “휠체어를 마음 편하게 실을 수 있는 대중교통이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관광지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아 특수 차량이 없으면 사실상 열린 관광지를 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열린 관광지 주변에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혔다. 지역별로 관광지를 선정해 열린 관광지를 마련하다 보니 해당 관광지에서 방문할 수 있는 장소가 한두 곳에 불과했다. ‘나눔여행’에 참여했던 신오균 씨(43)는 “전동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곳은 열린 관광지뿐이었고 월정사 등 다른 곳에서는 문턱을 넘다가 휠체어가 전복될 뻔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향후 열린 관광지를 확대하면서 보다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지금 관광지의 복지 인프라를 갖춰 놓으면 앞으로 관광 취약계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높은 수준의 국내 관광을 즐길 수 있다”며 “선진국들도 ‘모두를 위한 관광지’를 조성하는 데 노력하는 만큼 우리도 열린 관광지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