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건 사회부장
1980년 7월 영국 런던. 윔블던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5연패에 도전한 비에른 보리의 코치는 이렇게 말했다. 보리는 그렇게 간절했다. ‘이상한 종교에 빠졌다’는 낭설이 돌 정도로 외부와 단절하고 테니스에만 매달렸다. “너의 모든 것을 던져야 한다”는 코치의 조언을 실천했다.
절실함과 투신(投身). 전무했던 윔블던 5연패는 그렇게 달성됐다. 최근 개봉한 실화 영화 ‘보리 vs 매켄로’의 몇 장면이다.
고르바초프는 자서전 ‘선택’에서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절실한 구호는 현실에 대한 깊은 절망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의 냉전, 핵무기 경쟁을 끝낸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의 바탕은 이런 간절함이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만났다. 제네바에선 ‘핵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선언을 하는 데 그쳤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에 대해 “보수적이라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공룡 같다”고 평가했다. 레이건은 고르바초프를 “뼛속까지 볼셰비키”라고 말했다. 결국 레이캬비크 회담에선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회담 결렬 직후 “실패는 아니다. 처음으로 우리는 수평선 너머를 보았다”고 연설했다. 그리고 1년 뒤 소련은 미국과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 조약을 체결했다. 핵 경쟁과 냉전 종식의 첫걸음이었다.
고르바초프와 레이건 중 누가 주역인가. 국제관계 석학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냉전과 소련 종식에 대한 대부분의 명예는 고르바초프의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근본적인 원인은 구조적 요인(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쇠락, 소련 경제의 실패)이었다. 더욱 밀접한 요인들은 고르바초프의 개방 개혁 정책과 외교 정책에서의 새로운 생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신년사에서 그 배경도 분명하게 밝혔다. ‘생존을 위협하는 제재와 봉쇄’, ‘경제전선 전반에서 활성화의 돌파구’, ‘물질적 재부 창조’. 30여 년 전 경제가 망해가던 소련 고르바초프의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와 다르지 않다.
관건은 절실함이다.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이 결렬돼도 “수평선 너머를 봤다”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권좌에서 축출된 뒤에도 “조국의 모습을 바꾸기로 한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 고르바초프처럼 간절해야 한다.
외교에 비약은 없다. 윔블던 5연패를 달성한 보리는 승부의 기로에서 ‘한 번에 1점’을 되뇌었다. 두 번, 세 번, 네 번에라도 1점씩 따야 신년사의 플랜을 끝까지 실현할 수 있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