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12일 낮 제2서해안고속도로. 크레인 기사 한영탁 씨(46)는 자신의 투스카니 차량 가속페달을 밟았다. 1차로의 코란도 차량을 추월하더니 그 앞을 막아섰다. ‘쿵’ 소리와 함께 코란도에 들이받힌 투스카니는 2, 3m 밀려났다. 1.5km 전부터 차 옆부분이 중앙분리대에 닿은 채 벽을 긁듯이 서행하던 코란도도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한 씨는 자신의 차량 상태는 안중에 없이 곧장 코란도로 달려갔다. 운전자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달리던 차량을 멈추려 낸 착한 교통사고였다.
▷도로에 못이나 철판 조각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다른 차 타이어에 펑크가 날까 봐 치우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도 자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데도 이타심을 발휘한다. 보통의 양심을 가진 이라면 “그쯤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개 손익계산에 들어간다. 빚내서 기부하는 사람이 드문 것도 같은 이치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는 프린스턴대 신학대생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을 주제로 설교하는 과제를 주고 실험을 했다. 학생들이 예배당으로 가는 길에는 연기자에게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져 있게 했다. 그 결과 선행의 결정적 변수는 시간의 압박이었다. 배정받은 설교 시간까지 여유가 있던 그룹은 63%가 행인을 구한 반면 이미 늦었다고 들은 그룹은 오직 10%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사마리아인의 선함을 설교하러 가면서도 자신이 급할 때는 정작 눈앞에 쓰러진 사람을 외면한 것이다.
▷12일 그 현장을 지나간 게 나였다면 어땠을까. 과연 내 차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사고차량을 세우려 했을까. 더구나 멈춰서면 2차 사고의 위험이 도사린 고속도로였다. 그날 수십 대의 차량이 코란도를 스쳐 갔다. 물론 경적을 울리며 코란도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주거나 119에 전화한 이들도 있다. 마음이 급해도, 손해를 봐도 이타심에 순간적인 기지까지 발휘한 의인이 있기에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홍수영 논설위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