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완석 한국외대 교수
5월 11일 국립외교원에서 한러대화 국립외교원 북방경제협력위원회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공동 주최로 열린 ‘문재인 정부의 신 북방정책 전략과 과제’ 학술 대회에서는 ‘러시아 패싱’을 넘어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됐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1997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회담(남북미중)에서 배제됐을 때는 크렘린 지도자들은 큰 충격 받았고 대국적 자존심에 큰 손상을 가한 일종의 외교 참사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크렘린은 구소련이 붕괴할 때 보리스 옐친 정부가 성급하게 대북 관계를 멀리하고 친서울 일변도 노선을 달려온 것이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인 데 대한 후회와 반성이 있었다. 러시아가 주러 한국 대사관 외교관을 악기 밀반출 혐의로 추방하고 북한 공작원 소행으로 확신이 되는 블라디보스톡 한국 총영사 피살 사건도 부실하게 처리한 것도 일종의 외교 보복이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과거의 경험으로 보나 지정학적 가치로 보나 한반도 평화구도 논의 과정에서 러시아를 패싱하면 적지 않은 외교적 후유증과 손실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 해양과 대륙을 잇는 한반도, 러시아와의 협력 지금도 이르지 않다
성원용 인천대 교수
성 교수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는 강대국간 강대강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선택지가 없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면서 “네트워크 다변화와 복합화를 위해 주변 4강 중 상대적으로 소원했던 러시아를 상대로 한 경제 문화 외교 등 다방면의 노력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극동 지역 개발도 촉진될 가능성이 크지만 극동 지역 개발에 따른 기회가 한국까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극동 경협이 러시아 극동 → 북한 접경지역 → 북한 특구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북으로 가는 문이 열려도 한국이 극동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서성이다 사업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신범식 서울대 교수
신 교수는 “1988년 올림픽 이후 한 차례 물결이 일어난 이후 평창 올림픽 이후 북한 비핵화 진전 기대감 속에 다시금 ‘신북방 정책’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보장 및 평화체제를 교환하는 빅딜이 성사되어도 구체적인 실현은 긴 과정이 될 전망이며 무엇보다 북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북방 정책이 좌절되는 ‘북한 환원주의’가 극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한반도 지리적 이점의 명암
김태환 국립외교원 교수
김 교수는 “과거에는 공간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네트워크가 중요하고 스페이스보다 플로우가 강조된다”며 “네트워크는 교통 통신 물류 연결만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는냐가 더 중요하고, 무역만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대 유라시아 정책을 펴며 진출할 때 상품과 서비스 등을 넘는 공통의 ‘아이덴터티’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제 교류만이 아닌 ‘주제 외교(themed diplomacy)’가 중요하다는 것.
북유럽 국가들의 ‘주제가 있는 개도국 지원(ODA)’을 한 예로 들었다. 북유럽 국가는 환경 인권 사회복지 등 주제에 중점을 둔 ‘주제 ODA’를 한다고 김 교수는 소개했다. 공유하는 주제가 결정되면 공동의 비전이 나온다며 요즘은 정체성이 언어 문화가 아닌 ‘구성적인 정체성’ ‘롤의 정체성’ 즉 함께 무엇을 해 나갈 것인가가 강조된다고 말했다.
이성우 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
부산~베를린 구간 철도 요금이 1TEU 당 180만원이라며 선박 운송 요금보다 월등히 싸다고 하는 논리에도 숨은 요소가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한국은 철도가 표준궤여서 러시아의 광궤로 환승해야 한다. 국경을 통과하는 절차 비용도 적지 않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을 안쓰는 이유 중에는 철로의 용량이 제한된 것도 있다. 쓰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요율 적용이 양이 많으면 요율을 올린다. 무조건 대륙 철도를 이용하자고만 해서는 안된다고 이 본부장은 말했다.
러시아의 행정 절차가 복잡하고 정책 변경도 잦은 것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이 본부장은 “농업과 수산업이 러시아로 그대로 진출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며 “‘6차(1차 + 2차 + 3차 = 6차)산업’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 러시아의 원천기술, 중국의 일대일로, 북한의 SOC 북방 협력 가능성 무궁
한국기술벤처재단 김상환 창업센터 센터장
지금도 러시아의 원천 기술이 같이 손잡고 세계로 나가는 파트너를 찾고 있다며 한국 기업이 이런 기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김 센터장은 강조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스크바는 어느 면에서 실리콘밸리보다 창업하기 쉬운 도시라는 말도 덧붙였다.
김 센터장은 러시아 원천 기술과 한국의 상용화된 기술이 손잡고 가는 것과 관련 이스라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가장 빠른 시간내에 ‘스타트업 국가’로 변신한 것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 초반 소연방 붕괴 과정에서 유태인 자치구의 100만 명에 이르는 유태인을 이스라엘로 이민온 것이 바탕이 됐다는 것. 이스라엘에는 러시아어만 쓰는 마을도 여럿 있는데 이스라엘에서 창업센터와 테크노파크가 여기 저기 생겨나 창업 국가가 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고 김 센터장은 소개했다.
원동욱 동아대 교수
원 교수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절 신흥공업화전략으로 다른 지역보다 성장률이 2% 이상 높았던 중국 동북 지역이 침체되어 있는 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한반도와 러시아 연해주로 이어지는 축의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소장
안 소장은 북한 투자 환경에 최근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고 전했다. 평양~원산간 고속도로에 8유로의 통행료를 받는 유료화를 처음 시작한 것도 한 예다. 평양~나진 하산 구간 에 별도 합작회사를 만들어 외부 자본으로 건설하려는 말도 나오는 것처럼 북한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북한 인프라 투자에 중국과 러시아와 손잡고 들어가는 것이 ’금강산 관광구‘처럼 북한이 일방적으로 봉쇄 몰수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라는 말도 나온다.
● “러시아 협력, 잠재성 아닌 현실화할 때”
조병제 국립외교원장
고재남 국립외교원 교수
이규형 한러대화 조정위원장(전 주러시아 대사)
이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는 자국을 지지하지 않은 한국에 섭섭할 수도 있지만 각 국은 사안별로 국익에 따라 이합집산할 수 밖에 없다”며 “한러 관계를 내실화하기 위한 최고 지도자간 소통을 넓히고 깊게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