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신뢰는 어떨까. 아쉽지만 그리 높은 평가를 받긴 어려워 보인다. 먼저 우리나라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여러 번 무허가로 실험한 전례가 있다. 1982년엔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의 연구용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한 바 있고 2000년엔 3개월간 레이저로 농축우라늄을 만들기도 했다. 과학적 연구 목적에 소량을 농축해 봤다지만 협정 위반인 이 실험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고운 시선으로 볼 리 없었다. 결국 IAEA는 2004년 우리나라를 대대적으로 사찰하기도 했다.
그런데 원자력연은 2007년 이렇게 만들었던 농축우라늄을 포함해 무려 2.6kg의 우라늄을 심지어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당시 발표로는 ‘분실된 지 3개월이 지나 알게 됐고, 쓰레기 소각장에서 불타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핵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는 기술을 무허가로 실험했고, 그 결과로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시료를 내다버렸다니. 이 해명을 듣는 해외 전문가들은 과연 우리 연구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우리는 과거 원자력 기술을 처음 이전해 준 미국과 ‘한미원자력협정’을 맺고 있다. 이 때문에 발전용 핵연료를 국내에서 농축해 직접 만들지 못하고 전량 수입하고 있다. 2015년 재협상을 통해 일부 권한을 더 확보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포괄적인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계속해서 이런 사건을 일으키는 연구기관을 보며 미국과 IAEA는 과연 “한국은 신뢰할 만하니 앞으로 규제를 더 풀어주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몇 해 전 한 과학자가 ‘원자력을 연구한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을 받을 때가 있어 서글프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 아팠던 기억이 있다. 마땅히 과학자의 연구는 지원받아야 하며 그 인격은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폐기물을 빼돌리고, 방사성물질 창고의 화재를 은폐하고, 국가적 협약을 위반해 실험을 하는 일은 분명 질책과 징계의 대상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문책이 없다면 한국 원자력계의 신뢰는 점점 더 낮아질 것이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