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미등록아동 추방 취소’ 첫 판결 “부모 잘못으로 불법체류자 돼… 인권적 관점서 전향적 접근 필요”
한국에서 태어나 이른바 ‘그림자 아이’로 자라난 페버 씨(오른쪽)가 지난해 6월 충북 청주 외국인보호소에서 풀려난 뒤 어머니 조널 씨와 함께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청주=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청주지방법원 행정부(부장판사 신우정)는 17일 미등록 청년인 페버 씨(19)가 법무부 산하 청주출입국관리사무소장(현 청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강제퇴거 명령 및 보호 명령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7년 5월 17일자 A1면.
이번 판결은 ‘불법’이란 꼬리표 탓에 언제든지 가족과 떨어져 추방될 공포 속에 사는 미등록 아동을 구제한 첫 판결이다. 이탁건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한국 청년으로 성장한 미등록 아이들을 위해 사회적 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페버 씨는 1999년 한국에서 나이지리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아버지가 체류 기간을 연장받지 못해 강제 출국당하자 남은 가족이 모두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됐다. 모국으로 돌아가면 배 속 막내까지 다섯 남매를 먹여 살릴 길이 막막했던 어머니는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일시 체류 허가를 받아 아이들을 키웠다. 페버 씨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성실히 공부해 초중고교를 마쳤고, 지난해 4월 동생들을 먹여 살리려 취업했다가 당국에 붙잡혔다. 그가 추방 명령을 받고 구금돼 천식 고통과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는 사연이 본보 보도로 알려지자 시민들은 “구금을 풀어달라”는 탄원서를 보냈고, 마침내 석방됐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그는 법무부에 “추방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불법은 불법이다”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시민단체들도 그에 대한 특별 체류 허가를 요청했으나 명확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근본적인 추방 위협에서 벗어나려 소송을 진행했다. 페버 씨는 추방은 면했지만 여전히 미등록자라 취업할 수가 없다. 국내 ‘그림자 아이들’은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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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