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배기도 시행착오 보면서 끈기 발휘한다는 심리실험은 리더가 조직 바꾸는 핵심이란 뜻 성숙기 접어든 한국사회 리더도 ‘청바지 입은 꼰대’ 되지 않으려면 일하는 방법과 조직구조 혁신해야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이제 아기들에게 누를 때 소리가 날 것 같은 단순한 장난감을 주고 얼마나 많이 누르는지를 관찰해 보면 그룹 간에 흥미로운 차이를 볼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그룹은 두 번째 그룹보다 장난감을 두 배나 많이 눌러본다. 사실 이 관찰이 연구의 핵심이다. 치열하게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모습을 본 아기들은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모습을 본 아기들보다 자기도 모르게 두 배나 더 끈기 있게 노력한다는 의미다. 흥미롭게도 두 번째 그룹과 세 번째 그룹은 차이가 없다.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는 것은 아예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심지어 한 살배기 아기도 치열하게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공감하고, 스스로 끈기를 발휘한다.
이 실험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며칠 전 대한상의와 맥킨지가 발표한 한국 기업의 기업문화 진단 결과를 보고 나서다. 야근은 여전하고, 비효율적 회의와 불통의 업무방식 등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업문화가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중 ‘청바지 입은 꼰대’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조사에 참여했던 평균적인 직장인은 조직의 리더가 청바지로 갈아입었지만 여전히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빨간 펜만 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바지 입은 꼰대’라는 기막힌 조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기업이 초창기일 때는 상하 상관없이 누구나 진짜 청바지를 입는다. 첫 번째 그룹의 아기 앞 선생님처럼 리더가 문제를 붙들고 직접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고, 조직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리더를 본 조직원들은 너나없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한다. 소리 나지 않는 장난감을 수없이 두드리는 첫 번째 그룹의 아기처럼.
그러나 조직이 커지고 안정화되면 두 번째 그룹의 선생님과 아기처럼 변한다. 지금 우리 직장인들이 처한 환경이 딱 이렇다. 한국 사회가 급속한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산업계, 정부조직, 학계, 연구계, 언론계 등 모든 조직에서 중간 결재라인이 길어지고, 보고를 위한 보고, 회의를 위한 회의가 산더미처럼 늘어나고 있다. ‘현장을 떠난 지가 오래돼’라고 핑계 대는 관리자들이 갈수록 눈에 많이 띈다.
지금 리더라면 아기들 대상의 심리실험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어떤 리더로 비치는지부터 자문해야 한다. 아울러 모두가 진정한 의미에서 청바지 입은 혁신가가 될 수 있도록 한국 사회 전반의 일하는 방법과 조직구조를 혁신해야 할 때다.
이정동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