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 정의와 자본의 뒷모습 그려 “인간 존재 함께 고민했으면”
‘죽은 자로 하여금’의 등장인물들은 자본과 부조리한 시스템에 자발적으로 복무하거나 편승하면서도 결국 이용 당하고 희생된다. 편혜영 소설가는 “쓰면서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편혜영 소설가(46)가 2년 만에 장편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현대문학)을 펴냈다. 특유의 단단하게 직조된 문장과 감정이 절제된 신중한 묘사로 인물을 탐색해가면서도 전체 서사가 뚜렷해 빠른 호흡으로 읽히는 작품이다.
배경은 조선업 발달로 성장하다 몰락 중인 이인시의 한 종합병원. 서울 대학병원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이곳에 오게 된 무주는 병원에서 가장 평판이 좋았던 직원 이석의 비리를 알게 되자 고민 끝에 내부고발을 한다. 나름의 정의감에 한 행동이었지만 이후 무주는 오히려 동료들의 외면을 받고 한직으로 밀려난다. 그가 전 직장에서 관행이란 미명하에 장부조작을 하다 해고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입장은 더 난처해진다. 해직된 줄 알았던 이석이 당당히 복귀하며 무주의 혼란과 이석과의 긴장관계는 최고조에 이른다.
하지만 작가는 두 사람의 대치와 내적 고민이 무색하리만치 크게 버티고 선 거대한 부조리의 그림자 역시 서서히 드러내 보인다. “감추어진 진실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무주)는 겹겹이 쌓인 거대한 기만의 구조와 대면하며 동시에 그에게 함께 생존할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적대적인 사회조직과 마주친다.”(황종연 문학평론가)
소설은 배경, 장소, 인물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설계됐다. 작가는 17일 전화 인터뷰에서 “딜레마에 빠진 인물을 다루는 작업은 항상 흥미롭다”며 “도덕적 결함이 있지만 공익에 부합하기 위해 내부고발을 하는 ‘모순적 인물’을 떠올리는 것에서 이번 소설이 출발했다”고 말했다. 선악을 구분 짓기 힘든 인물들의 모순을 선명히 보여주기 위해 극심한 생존 투쟁이 벌어지는 쇠락한 ‘산업도시’를, 윤리성이 요구됨에도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병원’을 무대로 삼았다. 작가가 설계한 이 가상의,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누구를 옹호하고 비난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이 작품은 소설집 네 권, 장편 다섯 권을 펴낸 작가의 아홉 번째 책이다. 그는 “처음에 책을 내면 신기하고 기뻤는데 이제는 보통 일을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게 끝났으니 다른 건 뭐하지’ 하고 덤덤히 생각한다”며 “출간이 끝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웃었다. 여전히 “하루 종일 앉아서 소설 쓸 때가 가장 좋다”는 그는 에세이, 칼럼 등 다른 종류의 글쓰기는 최대한 자제하며 소설에 모든 걸 투자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등장인물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인간이 마냥 단순하지 않은 존재임을 함께 고민해보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