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허혁 지음/234쪽·1만4000원·수오서재
최근 고대하던 1일 2교대제를 시범 운행 중이지만 격일제로 했던 하루 18시간의 ‘악마적인 노동’은 친절이 마음이 아니라 몸의 문제임을 깨닫게 했다. 배차 시간에 쫓기고 불법 주차 차량을 피해 곡예하듯 정류장에 버스를 댄다. 식사는 물론 용변 해결도 종점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야 한다. 갈 길이 급한데 무릎이 불편해 버스 계단을 뒤뚱뒤뚱 오르는 할머니를 보면 짜증이 치솟는다. 하지만 마음을 밝게 하는 말을 찾아냈다.
“아직 젊고만 기어 올라온대요?”(저자) “아이고, 기사님 칠십이 넘어요.”(할머니)
폐쇄회로(CC)TV 4대가 늘 돌아가고 있어 버스에 떨어진 10원짜리 하나도 가져가지 않는 버스기사일은 정직한 노동이라고 말한다. 석 달에 한 번 보너스에서 8만 원씩 내 운동장 사용료, 비품, 회식비로 쓰는 축구부원들을 보며 돈이 많아야 멋진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님을 알게 된다.
어릴 적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렸던 기억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작은 일에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리려 노력하는 모습은 애잔하게 다가온다.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철학자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글을 읽다 보면 버스 운전기사들이 새롭게 보인다. 그들 역시 감정과 애환, 각각의 역사가 있는 존재임을 환기하게 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