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뉴욕 특파원
지난달 27일 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았을 때 전 세계가 놀랐다. 지켜보던 외신 기자들은 박수를 쳤고, 눈물도 흘렸다. 도깨비보다 더 히트한 ‘한반도판 감동 드라마’였다. 사람들은 늘 칭찬을 하다가 마지막에 화를 낸 사람보다 늘 화를 내다가 마지막에 한번 크게 칭찬을 해준 사람을 더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정상회담 직후 여론조사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생각이 좋아졌다고 응답한 사람은 65%로 조사됐다.
북한 업무에 능통한 복수의 외교 소식통도 남북 정상회담을 보며 “생각보다 더 분위기가 좋다” “김정은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며 놀랐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 중에 눈길을 끄는 게 있느냐고 묻자, “1992년 비핵화 선언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꼼수에 여러 번 당한 미국 전문가들이 “여기까진 이미 와 봤다”고 냉정하게 평가한 이유다. 북한이 비핵화 이행을 위해 보여준 건 핵보유국을 선언하며 용도 폐기된 오염된 핵실험장 폐기 발표 외엔 아직 없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 관계자들이 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생각은 “낙관적이지만 현실적”이다. 이 말은 베트남전쟁에서 8년간 포로로 잡혔다가 살아 돌아온 미군 장교 스톡데일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스톡데일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낙관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였다”라고 말했다. ‘곧 나갈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만 품은 포로들은 좌절감과 상심 속에서 죽어갔지만, 곧 나가지는 못해도 희망을 갖고 필요한 일을 차근차근 준비한 현실주의자들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북한 관광객들이 퀘벡에서 전통음식 ‘푸틴’과 단풍나무 시럽이 들어간 ‘메이플 맥주’를 자유롭게 즐길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그런 변화는 환호와 박수, 막연한 희망만으론 오지 않는다. 북한의 비핵화 이행 없이는 불가능하며 모든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따지는 현실 감각부터 잃지 않아야 한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