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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일제 경관이 청년들을 쏴…” 전기공이 쓴 역사

입력 | 2018-05-21 03:00:00

‘일기로 역사를 읽다’ 학술대회




일제강점기 전화교환수 H 씨가 쓴 1941∼1942년 일기의 일부.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적기(赤旗)를 쥔 조선인 군중이 경찰의 경비구역을 돌파하려고 하였고 … 일본 특별경비대와 충돌했다. 그때 특별경비대원이 발포하여서 조선인 보안대원 2명이 즉사하고….”

1945년 9월 8일 미군이 인천항에 상륙하는 걸 환영하러 나온 한국인에게 일경(日警)이 발포해 2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일본 측 자료는 인천경찰서장 등의 얘기에 근거해 이렇게 전했다. 군중에게 잘못이 있으며, 일본인 경찰의 발포는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과연 이게 진실일까.

18일 열린 국사편찬위원회 학술대회 ‘일기로 역사를 읽다’에서 소개한 당시 인천 전기공 I 씨가 목격하고 일기에 남긴 상황은 사뭇 다르다. “오후 2시경 나는 인천재판소 옥상에서 상륙 광경을 보는데, 도로에는 조선청년들이 연합군 국기들을 모두 들고 약 1000명가량 행렬을 하였다. 기에는 조선독립만세니 기타의 문구를 써서 가진 사람도 있다. 이 행렬이 재판소 앞을 갈 제 인천경찰서에서 (일제) 경관이 나와 피스톨 권총으로 쏘아 부상자가 나고 환영이 중지가 되어 풍비박산이 되었다.”

이 일기에 따르면 사건에 앞선 충돌도 없었고, 군중은 적기가 아니라 연합국 국기들을 들고 있었다. 정병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이 일기를 소개하면서 “미군이나 일본경찰은 환영 행위를 금지했다고 하는데 한국인들에게 전달되었는지부터 의문”이라며 “과연 일본 측 기록과 노동자의 일기 중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라고 되물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식민지시대 전화교환수 H 씨의 일기와 1950, 60년대 인천지역 노동자의 일기에 관한 연구 등도 발표됐다.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은 “국가 정책이나 제도 변화 등 거시적으로 접근한 역사 연구는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서 산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포착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기도 한다”며 “이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사료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인의 일기”라고 설명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