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자녀 둔 맞벌이 가정, 5일간 부부역할 바꿔보니… “가사분담 불협화음 반성합니다”
맞벌이 부부인 김태규 이한나 씨가 닷새간 남편과 아내, 아빠와 엄마 역할을 바꾸는 실험에 참여했다. 퇴근 후 아내 이 씨(왼쪽 사진)는 첫째 딸과 놀이를 하고, 남편 김 씨는 둘째 아들을 업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 김 씨는 실험 이후 “아내가 10배는 더 집안일을 많이 한다는 걸 몰랐다”고 했다. 김태규 씨 제공
네 살배기 딸과 10개월 된 아들이 잠들자 부부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맞벌이 부부인 김태규(34) 이한나 씨(35)는 A4 용지 한 장씩을 앞에 두고 각자의 하루 일과를 시간대별로 촘촘히 써내려 갔다. ‘첫째 깨우기’로 시작된 아내 이 씨의 하루 일과는 어느새 A4 용지 한 장을 가득 채웠다. 반면 남편 김 씨는 출근과 퇴근 전후 3, 4가지 일과를 쓰고 나니 더 쓸 게 없었다. 부부는 서로의 일과를 교환했다. 이후 11일부터 15일까지 닷새간 남편은 아내가 써준 일과대로, 아내는 남편의 일과대로 생활했다. ‘부부 역할 바꾸기’ 실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 아내로 산 남편, “내가 TV를 볼 때도 아내는…”
김 씨는 첫째 아이가 돌을 맞은 2015년부터 이유식을 직접 만들었다. 퇴근 후 재료를 사 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이유식을 만들면서 ‘육아 잘하는 아빠’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아내 역할을 한 첫날 생각이 바뀌었다. 아내는 자신보다 1시간 이상 일찍 일어났다. 아내가 써준 대로 기상과 함께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이어 첫째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야 하는 오전 9시 전까지 아이들 씻기기, 옷 입히기, 유치원 준비물 챙기기 등 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출근 전 집 안 정리를 시작했다. 방바닥에 유난히 얼룩이 많았다. 아내에게 “이게 다 뭐냐”고 묻자 “1년 전부터 있던 얼룩”이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세탁기를 돌리려니 세제를 얼마나 넣어야 할지, 탈수를 몇 분이나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근무 중에도 퇴근 후 집안일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을 하자마자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 계란 반찬과 멸치볶음 등을 꺼내 아이들을 겨우 먹였다. 두 아이를 씻기니 오후 10시. 주방과 거실을 정리하고 나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생각해 보니 퇴근 후 자신이 TV를 볼 때도 아내는 끊임없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 남편으로 산 아내, “몸은 조금 편했지만…”
이 씨에게 닷새간의 실험은 인내의 시간이었다. 가사와 육아로 쩔쩔매는 남편을 보면서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란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제 눈에는 해야 할 일이 막 보이는데, 남편 눈엔 보이지 않나 봐요. 진짜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5일간의 ‘짧은 실험’ 뒤 부부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먼저 가사 분담과 관련해 대화를 많이 나누는 일이다. 대개 남편들은 ‘알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아내는 남편에게 정확하게 어떤 일을 언제까지 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게 중요하다. 남편 김 씨는 “내가 해야 할 가사나 육아를 아내가 명확하게 정해주면 아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험의 두 번째 결론은 ‘핀잔주기보다 칭찬하기’다. 설거지를 한 남편에게 “그릇에 기름기가 남았으니 더 깨끗이 하라”고 핀잔을 주기보다 “고맙다”고 하면 남편을 가사와 육아에 더 쉽게 동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는 게 집안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아내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치우고 또 치워도 끝이 없다. 아내 이 씨는 “남편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부탁한 뒤 자주 칭찬을 하겠다”고 말했다.
‘부부간 가사노동 균형 찾기’에 정부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정부는 가사노동을 포함한 가족관계 불평등 실태를 조사한 뒤 이를 점수화한 ‘가족평등지수’를 발표할 예정이다. 가정 내 가사와 육아 균형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김윤종 zozo@donga.com·이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