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래 16개월간 공석인 주한 미국대사에 해리 해리스 태평양사령관을 공식 지명했다. 주일미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해리스는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미 해군 제독이 됐다. 전투함 함장이나 전투기 조종사가 아닌 대잠초계기 전술통제관으로서 최초로 별 4개를 단 인물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해리스를 호주 대사로 지명했지만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상황에 정통한 그를 한국으로 돌려 긴급 투입했다.
▷백악관은 지명 발표에서 해리스에 대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폭넓은 지식과 리더십, 지정학적 전문지식을 갖췄다”고 소개했다. 해리스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태평양사령관으로 임명돼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며 중국의 해양패권 확대를 견제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미국의 태평양전략, 특히 한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해리스로선 이제 본격화하는 ‘인도-태평양 구상’에 한국이 동참하도록 강하게 이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 대중 강경론자로 꼽히는 해리스지만 언제든 전장에 뛰어나갈 태세를 갖춰야 하는 군인으로선 당연한 자세일 것이다. 그가 꽉 막힌 군인은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지난해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됐을 때 해리스는 의회에서 ‘김정은을 무릎 꿇리기보다 정신 차리게 하는’, 즉 군사력의 뒷받침을 받는 외교를 강조했다. 이제 군복을 벗는 그에게 전략적 마인드를 갖춘 탁월한 외교관으로의 변신을 기대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