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회장 취임 당시 ‘초우량 기업’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세웁니다. 그 목표를 위해 고객 우선주의, 선제적 연구개발 투자, 창의와 혁신을 위한 인재 경영을 실천했습니다. 그 성과로 LG그룹은 가전제품,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됐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도덕 경영을 실천하시고, 누구에게나 겸손 소탈하셨던 큰어른’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장례는 ‘나 때문에 번거로운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진행했습니다. 조문과 조화를 사양했지만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의 발길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구 회장은 ‘LG 의인상’을 만들어 국가와 사회 정의를 위해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의 뜻을 기리는 등 사회 공헌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구인회 그룹 창업자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내력은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 박사, 오뚜기그룹의 함영준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노벨, 록펠러, 카네기 등 사회 공헌을 실천한 기업인이 적지 않습니다.
반면 소비자들은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 대한항공의 갑질 사태 등을 지켜봤습니다. 불량 제품 공급, 오염물질 배출, 비정규직 차별, 일감 몰아주기,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등 기업들의 일탈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정도 경영’과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 ‘인간존중 경영’을 강조한 고인의 경영 철학은 더욱 빛이 납니다. “기업은 국민과 사회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습니다.” 그의 2017년 신년사가 귓전을 울립니다.
최근 사회적 기업이 늘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에 일자리 제공, 지역사회 발전 및 공익 증진 등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영업 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준 레드스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마리몬드 등은 사회적 기업으로 매우 유명합니다. 윤리 경영과 사회 공헌에 앞장서는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이윤 추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약탈적 기업의 행태와는 결이 다릅니다.
오늘날 공정무역 상품이나 친환경 제품 등을 의식적으로 소비하는 ‘똑똑한’ 소비자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환경과 노동, 인권 등 여러 분야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며 조금 더 비싸더라도 윤리적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 행태입니다. 윤리 경영과 윤리적 소비가 만난다면 상생과 협력의 선한 시장경제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한 재벌 총수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는 성찰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