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작성한 ‘KT&G 동향 보고’ 기업銀 동원해 사장선임 개입 시사, “ISS에 외부영입 설득” 명시도 기재부 “실무진 만든 비공식자료… 중간관리자에도 보고 안돼” 해명 “민간기업 인사 개입 증거인멸… 작성-파기-보고라인 밝혀야” 지적
기획재정부가 올 1월 KT&G 신임 사장 선임을 앞두고 만들었다가 폐기한 ‘KT&G 관련 동향 보고’ 문건.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실 제공
22일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기재부는 올 1월 ‘KT&G 관련 동향 보고’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한 뒤 같은 달 폐기했다. 심 의원은 “정부가 경영 개입이 불가능한 민간기업인 KT&G 사장 선임에 구체적으로 개입한 증거를 만들었다가 바로 폐기한 것”이라며 “문건 작성과 폐기를 누가 지시했는지, 실제 KT&G 사장 선임에 조직적 개입이 있었는지 등을 검찰 수사로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된 정부 문건은 국내 담배사업을 총괄하는 기재부 국고국 출자관리과가 작성했다. 여기에는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던 백복인 KT&G 사장 재선임 동향과 향후 전망이 담겼다.
또 “외국인 주주의 의결권 대행사인 ISS에 외부인사 최고경영자(CEO) 영입 필요성 설득”이라고 명시했다. 정부가 지분이 50%가 넘는 외국인 주주들을 설득해 KT&G 내부 출신인 백 사장을 교체하려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올 초 KT&G 안팎에서는 친문(親文) 인사가 사장에 선임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KT&G의 2대 주주(지분 6.98%)인 기업은행은 문건의 시나리오대로 사장 선임 절차에 참여했다. 기업은행은 기재부가 ‘경영권 참여일’이라고 명시한 2월 2일 공시를 통해 KT&G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했다. 사외이사 2명도 새로 추천했지만 실제 선임에는 실패했다. KT&G 1대 주주(지분 8.71%)인 국민연금공단은 주주총회 전날인 3월 15일 백 사장 연임과 관련해 중립 의견을 밝혔다. 백 사장은 결국 주총에서 연임안이 통과되며 2021년까지 사장직을 유지하게 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1월에 만들어 1월에 없앤 문건”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의 공식 정책 자료가 아닌 만큼 문서 번호를 달거나 보고를 하는 등 폐기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문건 관련 조사가 시작된다면 해당 문건이 누구에게 보고됐고, 파기 지시는 누가 내렸는지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게까지 보고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지만 기재부는 부인하고 있다.
세종=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