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비핵화 협상]구체화된 트럼프식 비핵화 프로세스
○ 트럼프, 김정은을 압박하면서도 명분 제공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비핵화 해법과 북-중 관계, 북한의 최근 태도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번 회담이 공동 언론발표문이나 공동 기자회견을 갖지 않기로 한 만큼 작심하고 북한에 전할 메시지를 던진 것.
우선 비핵화 방식. 트럼프 대통령은 “일괄타결이 될 수 있다면 분명히 더 나은 방식이 될 것”이라면서도 “꼭 일괄타결이 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확히 한꺼번에 (비핵화하는 것은) 물리적인 이유(physical reasons)로 불가능할 수 있다. 물리적인 이유로 아주 짧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일괄타결”이라고 했다.
북한이 핵탄두·시설과 핵물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한 번에 폐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이를 한꺼번에 폐기하는 건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최소한의 단계를 나눌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 대신 비핵화 프로세스의 단계를 나누더라도 기존 ‘살라미 전술’은 안 되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비핵화를 완료해야 한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구상의 뼈대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에 대해선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우리는 비핵화를 위한 강력한 구상과 강력한 옵션들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 北에 마지노선 던진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꼭 찍어 ‘안전 보장’을 직접 약속했다. 사실 김정은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기도 하다. 북한이 16일 ‘김계관 담화문’을 통해 리비아식 모델을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 높은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불순한 기도”라고 맹비난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보장을 언급한 것.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북-미가 마지막 비핵화 합의를 앞둔 가운데 ‘디테일의 악마’는 여전히 적지 않다. 속전속결을 요구하는 미국이 염두에 둔 비핵화 단계별 마지노선과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보장의 구체적인 조치들을 맞추는 과정에서 협상 국면이 다시 한 번 출렁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정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을 열지 않을 수 있다”며 “회담이 잘될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되지 않을 만한 상당한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단계적 비핵화적 요소를 수용하는데도 CVID 선언 등을 하지 않는다면 회담을 늦출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북한을 압박한 것이다.
○ 韓美, 남북미 종전선언 논의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며 “북-미 간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비핵화와 체제 안정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태도를 바꿔 한국과 미국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비핵화 해법에 대한 불만 때문인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등 북-미 간 고위급 접촉을 통해 북한의 불안감을 미국이 직접 해소해야 한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3국 정상회담을 갖고 종전선언을 채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종전선언과 동시에 북-미 관계 정상화 협상을 시작해 테러지원국 해제와 북-미 수교 등 북한이 원하는 실질적인 체제 안전보장 조치를 한국이 보증하겠다는 구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종전선언 구상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도 부정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워싱턴=한상준 alwaysj@donga.com / 문병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