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역할에 노골적 불만 표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세계 최고의 포커 플레이어’(속내를 감추는 승부사라는 뜻)라고 지칭하며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 불신감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한 모두발언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두 번째 방문하고 떠난 다음 태도 변화가 있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기자들이 ‘중국이 북-미 관계에 부정적 역할을 했는가’라고 묻자 “중국에 좀 실망했다. 김정은이 두 번째로 시 주석을 만난 뒤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거듭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누구를 비난하는 건 아니다. 아무 일도 없었을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면서도 “(김정은의) 첫 번째 방중(3월 25∼28일)은 누구나 다 알았지만 두 번째(5월 7, 8일)는 깜짝 놀랐다. 그 만남 뒤에 상황이 바뀌었다. 그러니 내가 기분 좋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시 주석은 세계 최고 수준의 포커 플레이어”라며 “나 역시 그가 하는 것과 같은 것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이런 호칭을 붙인 것에는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경고의 뜻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시 주석 평가는 김 위원장의 두 번째 방중 이후 많이 달라졌다. 지난달 27일 판문점 선언 이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여러분은 나의 좋은 친구인 중국 시 주석이 미국에 해준 중차대한 도움, 특히 북한 국경선에서 보여준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백악관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을 면담하면서 “확실히 시 주석이 김정은에게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분명히 협상을 원했던 김정은이 지금은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북한)이 중국과 얘기했을 수도 있다. 그게 맞을 것”이라고 시진핑 배후론을 거론했다. 당시는 북한이 16일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전격 취소하고, 17일엔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일방적 핵 포기를 강요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하겠다”고 밝혔을 때였다.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내미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은 22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중국과의 무역을 생각할 때 그들(중국)이 북한과의 평화에 있어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한다”면서 “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중 무역협상을 계속 ‘지렛대’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옆자리에 앉아 있던 문 대통령을 바라보며 “문 대통령은 (내가 기분 나쁘다는 것과)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다. 기분이 어떠시냐. 의견이 있지 않으냐”고 말하기도 했다. 또 “문 대통령이 곤란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중국 바로 옆에 살고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문 대통령은 (중국에서) 멀지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트럼프 대통령의 ‘시진핑 배후설’ 제기에 대해 “중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역할을 하고 있다”며 “중국이 발휘하는 역할은 긍정적인 역할뿐”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