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13> 고령화 시대의 작은 장례식
지난해 인상 깊은 장례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전에 같이 근무한 학교 선생님의 모친상이었는데 가족끼리만 모여 2일장을 치렀다고 하더군요. 그 선생님은 부고조차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느냐”고 물으니 노모가 101세에 돌아가신 데다 본인도 팔순이 넘어 번잡스럽게 알릴 필요 있나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빠는 먼저 세상을 떴고, 고령의 올케와 본인만 남아 가족끼리 작고 차분하게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더군요. 식구들만 모여 추모예식을 하고 다음 날 화장을 하니 자연스럽게 2일장이 됐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오래전 은퇴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학교장까지 지낸 분이라 충분히 많은 문상객이 올 수 있었을 텐데, 남들에게 폐 끼치기를 싫어하는 평소 성품대로 장례를 치른 셈이죠. 한편으론 ‘이게 고령화시대의 장례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같은 소식을 접한 한 지인은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길은 제대로 모셔야지, 빈소도 없이 그래도 되느냐”고 반문하더군요. 하지만 화려하게 꽃 장식을 하고 손님을 많이 받는 3일장을 한다고 장례의 의미가 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간소한 장례는 불효일까요?
■ 3일 내내 허둥지둥… 추모할 틈 없어
하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조문객을 받고 식사를 대접하다 보니 정작 안치실의 아버지 얼굴은 몇 번 보지 못했다. 김 씨는 “밤낮으로 손님을 받아야 하니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릴 시간조차 없었다”고 했다. 그는 “소수의 지인만 모여 뜻깊은 예식을 올리는 간소한 장례식도 좋을 것 같다”며 “하지만 한국 문화에선 ‘마지막에 호강시켜 드려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 막상 내가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례 전문가들은 ‘고인의 추모와 유족의 위로’라는 장례 본연의 의미를 현대에 맞게 살리려면 손님 받기 위주로 진행되는 3일장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례로 가까운 일본과 중국도 우리처럼 3일장을 치르지만 조문객을 받는 시간을 제한한다.
서동환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소장은 “일본에 가보니 3일장의 첫날은 가족 중심으로 집에서 보내고 둘째 날은 장례식장을 정해 조문객을 받더라”며 “초청 규모도 50∼100명 정도로 적었다. 추모예식을 통해 서로 위로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3일 내내 식사를 제공하는 건 우리나라 특유의 장례 문화인 셈이다.
본래 장례식장 식사 문화는 과거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쳐 상여를 나를 때 상여꾼들과 멀리서 온 조문객에게 밥을 대접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태호 대한장례지도사협회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장례 한 건당 평균 비용은 1400만 원에 달하는데 이 중 80%가 식대”라며 “식사 문화만 바꿔도 장례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부의금을 받지 않고도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저출산 고령화로 자연스레 장례 기간이 2일장으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국은 법적으로 사망 후 24시간이 지나야 화장을 할 수 있다. 2일장은 가장 짧은 형태의 장례인 셈이다.
정혁인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정책기획부장은 “통계로 잡히진 않지만 2일장 등 ‘간소한 장례’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걸 체감할 수 있다”며 “베이비붐 세대의 장례가 본격화되면 젊은 세대의 부담이 커져 이 같은 장례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범수 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문화산업학과 주임교수는 “장례 기간이 줄어들면 짧은 시간에 집단적으로 추모와 위로의 시간을 갖는 장례 예식 문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우선 imsun@donga.com·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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