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 산업1부 기자
검은 정장 차림으로 한 시간 넘게 자리를 뜨지 못한 중년 여성도 있었다. 10여 년 전 작은 회사를 차린 것을 계기로 고인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크고 작은 행사에서 몇 차례 마주쳤는데, 늘 먼저 다가와 “회사 잘되고 있지? 잘돼야지”라며 말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고인 주변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많겠어요. 그런데 나 같은 사람까지 챙겨주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잘돼야지’라는 짧은 한마디가 큰 힘이 됐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재벌이나 총수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오너 일가의 갑질이나 폭언, 폭설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갑질 피해의 대상은 모두 가까운 거리에서 이들과 함께 일했던 직원이나 기사들이었다. ‘을’을 향한 부와 권력의 남용에 많은 사람은 감정을 이입하며 공분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조차 재벌 갑질은 단골 소재가 됐다. 가상 시나리오와 현실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들이 상승 작용을 하며 국민의 분노 게이지를 높이고 있다. 많은 기업인이 한국 사회에 팽배한 ‘묻지 마식 반기업 정서’가 경영 활동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고인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의를 갖추되 모든 사람을 진심을 갖고 대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단골식당을 찾으면 종업원에게 1만 원, 2만 원이라도 쥐여줬고, 함부로 반말을 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LG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많은 사람이 슬퍼하는 이유는 거창한 데 있지 않다.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서부터 시작된 평판과 존경 때문이다. 많은 기업인이 고인의 생전 행보를 깊이 음미해 보면 좋겠다. 한국 사회에 모처럼 훈훈한 미담을 안기고 떠난 고인이 부디 영면하길 바란다.
김재희 산업1부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