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랩’의 선구자 장자의 사상 기존의 쓰임새로만 판단 말고 틀에서 벗어나야 신상품 탄생 소비자가 물건용도 결정하는 소비혁명시대 발상전환 필요
팹랩의 선구자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이 장자다.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오는 혜시와 장자의 다음 대화를 살펴보자.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다. “박씨를 하나 얻었는데 심었더니 엄청난 크기의 박이 열렸다네. 너무 커서 바가지로 만들어 쓸 수가 없어서 망치로 부숴버렸다네.” 일견 화려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쓸모가 없는 장자의 사상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장자가 반박했다. “송나라 사람 중에 솜을 표백하는 사람이 있었다네. 이 사람은 손이 자주 터서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약을 하나 개발했다네. 약은 손을 트지 않게 하는 데 아주 잘 들었지. 어느 날 나그네 한 사람이 와서 백금의 돈을 주고 이 약을 만드는 비방을 사 갔다네. 나그네가 오나라 왕에게 가서 비방을 말했더니 왕은 나그네를 장수로 삼아 월나라와 전쟁을 치르게 했다네. 추운 겨울 수전(水戰)에서 오나라는 월나라를 대파했고, 나그네는 왕으로부터 큰 땅을 얻었다네. 같은 비방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평생 솜 다루는 일을 했지만 어떤 사람은 장수가 되고 큰 공을 세웠듯 같은 것이라도 쓰기 나름 아니겠나? 큰 박으로 큰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면 근사할 텐데 뭐 하러 박이 크다고 걱정하는가?”
장자는 박의 크기를 탓할 것이 아니라 크기에 맞춰 적절하게 쓰임새를 정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혜시와 장자의 차이는 재료나 사물의 쓰임새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다. 혜시는 사물의 쓰임새를 기성적인 관점에서만 봤다. 박이 너무 커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며 부숴버렸다. 장자는 틀에서 벗어나 박을 새로운 상품으로 탄생시켰다.
큰 박은 기업에서 만들어 내놓는 공급자 주도의 상품이다. 장자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를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해 큰 박을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만든 물건의 가치를 극대화한 장자는 그를 통해 지극히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누렸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장자는 약 2300년 전에 이미 실현하고 있었던 셈이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정리=최한나 기자 h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