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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된 가자지구는 ‘지붕 없는 감옥’, 경제파탄에 기저귀-우유 살 돈 없어

입력 | 2018-05-28 03:00:00

팔레스타인 22세 예비 아빠가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긴 이유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청년 파시 하르브(22·사진)는 20일 밤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그는 최근 결혼식장 웨이터로 일했다. 하르브는 일당 14달러를 받으러 가던 길에 절망과 화염에 휩싸였다. 하르브가 분신하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촬영돼 퍼지면서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다. 그는 곧 첫아이의 아빠가 될 예정이었다.

하르브의 어머니 마즈다는 “출산을 앞둔 아내를 위해 진료를 받게 해주긴커녕 기저귀와 우유도 사줄 수 없는 남자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신체의 절반 이상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그는 3일 만에 힘겹던 생을 마감했다.

무슬림에게 자살은 이슬람 경전 꾸란에 반하는 죄악이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가자지구에서 지난해 수십 건의 자살이 보고됐다. 가혹한 경제 상황으로 청년들이 느끼는 무력감이 반영된 것이다.

가자지구는 이달 텔아비브에 있던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으로 촉발된 팔레스타인의 전국적인 시위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한 곳이다. 미국대사관 개관식이 열린 14일에만 60명이 숨지고 2700명 넘게 다쳤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3월 30일부터 시작된 ‘위대한 귀환 행진’ 이후 가자지구에서만 100명 이상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 주민들을 총알받이로 세우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가자지구 주민들이 당면한 절망적인 상황이 그들을 죽음의 행진으로 내몰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는 18일 유엔인권이사회 특별회의에서 “가자지구에 사는 190만 명의 주민은 장벽에 갇힌 채 더 많은 제약과 더 큰 가난을 겪고 있다”며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된 지 1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고용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고, 전력난과 부족한 보건 서비스, 건강을 위협하는 하수처리 시설로 인해 삶의 기반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이듬해 가자지구에서 파타 정파를 밀어내고 실권을 장악하자 강력한 봉쇄정책을 시작했다. 이집트가 통제하는 라파 검문소 역시 하마스가 터널을 통해 이집트 시나이 지역의 극단주의 무장단체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2013년 봉쇄되면서 가자지구는 완전히 고립됐다.

오랜 봉쇄로 인해 가자지구의 경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은행(WB)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가자지구의 경제성장률은 0.5%에 그쳤다. 1994년 2659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올해 1826달러로 떨어졌다. 유럽평의회 의회협의체(PACE)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는 “가자지구 인구의 43%가 실업자로 청년층 실업률은 60%에 달한다. 또한 전체 인구의 80%가 인도주의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붕 없는 감옥’에 갇힌 청년들의 꿈은 공허하다. 가자지구 인구의 66%가 25세 미만이다. 팔레스타인 정치분석가 마젠 사피는 “우리 젊은이들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회도 희망도 찾을 수 없다”며 이스라엘의 봉쇄를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 국제사회와 아랍 국가들도 팔레스타인을 비극적인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와 하마스 역시 자국민에 대해 공동책임을 지지 않으면 우리는 더 많은 국민의 자살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