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찬성… 낙태금지 헌법조항 폐지
1983년 국민투표에서 67%의 찬성으로 개정된 아일랜드 헌법 8조다. 인구 78%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는 가톨릭 교리를 충실히 지키며 유럽에서 가장 엄격하게 낙태를 금지해 왔다. 낙태를 하면 최대 14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정 헌법이 발효된 1983년 이후 약 17만 명의 아일랜드 임신부가 원정 낙태를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낙태 허용을 위한 사회운동에 불을 붙인 건 2012년 31세 젊은 나이로 숨진 사비타 할라파나바르였다. 치과의사 자격 시험을 준비 중이던 인도 출신 사비타와 의료기계 회사에 다니는 남편 프라빈은 2012년 아기 임신 소식을 들었다. 두 사람은 부부의 이름을 합친 ‘프라사’라는 태명을 부르며 행복해했다. 그러던 임신 17주 차 사비타는 위경련 증세가 있어 동네 병원을 찾았다. 그날 밤 그녀의 양수가 터졌고 산모의 감염 위험이 높아 아이를 살리기 어렵다는 의사의 진단을 들었다. 결국 사비타 부부는 아이를 지우고 산모를 살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병원은 “태아의 심장이 뛰고 있어 당장 아이를 지울 수는 없다”며 사흘 동안이나 시간을 끌었다. 아이는 사망했고, 그사이 패혈증 증세로 고열을 오가던 사비타도 결국 숨졌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아일랜드 전역은 물론 런던과 인도 델리까지 시위의 불길이 번졌다. 낙태 허용 캠페인을 이끄는 데트 매클로플린 씨는 “사비타를 보며 모두가 이 일이 언제든지 나 자신, 혹은 내 아내, 내 딸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 아일랜드는 2013년에 임신부의 생명에 지장이 있을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사비타의 아버지는 26일 국민투표 결과 소식을 인도에서 듣고 “너무나 행복한 날”이라며 기뻐했다.
이번 개헌으로 아일랜드 정부는 조만간 임신 12주 이내 중절 수술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고 12∼24주 사이에는 태아 기형이나 임신부의 건강 또는 삶에 중대한 위험을 미칠 우려가 있을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