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세규 김영사 대표이사 사장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들리는 이 소리들은 모두 현재에 있다. 보는 것, 냄새 맡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쉼 없이 변화하는 현재에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미래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이 혹시 과거나 미래가 존재한다는 증거 아닐까. 아니다. 이때의 과거도 현재의 기억일 뿐이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예견이나 기대일 뿐이다. 모두 현재 경험의 일부다.
그렇다면 현재는 붙잡을 수 있는 실체가 있을까? 과거는 회상하는 지금, 미래는 기대하는 지금, 현재 또한 이미 없다.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일이, 지금 이 순간 이 마음속의 그림자일 뿐이다.
이 실체 없는 시간 속의 ‘나’는 실체가 있을까? ‘나’를 찾아보아도 하나로 고정된 ‘나’라 할 만한 게 없다. 몸이나 마음, 직업을 ‘나’라고 여기며 동일시해 왔지만, 환상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겠다며 고통받아 왔다. 이제 그 허망한 착각에 머무를 필요가 없음을 자각하는 순간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이렇게 썼다.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그 단어의 첫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라고.
고세규 김영사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