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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육아]세상 모든 임신부들에게 박수를

입력 | 2018-05-28 11:30:00



‘콧구멍으로 수박이 나오는 느낌이다.’

내가 들은 출산의 고통을 표현한 말 중 가장 적확한 표현이다. 흔히 인간이 느끼는 최고 고통을 10이라 할 때 출산이 9 정도에 이른다고들 한다. 평소 작디작은 구멍에서 작은 수박에 비견될 만한 아이 몸을 빼내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첫 아이 임신 때 이런 류의 표현들을 읽으며 설레는 한편으로 두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다수가 제왕절개수술이나 무통주사 분만을 한다지만 불행히도 나는 세 아이 출산 때 모두 무통주사를 맞지 못했다. 출산이 너무 빨리 진행됐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행운이고 어찌 보면 불운이다. 그 덕분에 나는 세 번의 출산에서 모두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고통’을 온전히 겪었다.

첫 아이 때는 경황 중에 출산을 맞았다. 아이는 드라마틱하게도 출산휴가 D-1일 아침 바깥세상의 문을 두드렸다. 초산치고 이례적으로 빠른 출산이었다. 전날 밤새 회사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고 사무실 짐을 챙겨오려고 가방을 준비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 배에 살짝 통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책에서만 읽던 ‘가진통’인 줄 알았다. “나 말로만 듣던 가진통 오나봐. 그래도 병원 한 번 가봐야겠지?” 신랑이랑 이런 잡담을 나누며 떨렁떨렁 걸어서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상태를 확인해본 분만실 간호사에게 “이미 자궁문이 3cm 열렸다”는 말을 듣고야 나도 신랑도 심각성을 인지했다. 출산은 급속히 진행됐고 우물쭈물하다가 무통주사 맞을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몇 시간 진통하고 아이가 나오는 느낌을 온전히 느끼며 첫 애를 만났다.

둘째와 셋째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진통 초기엔 진행이 느려 유도분만 주사를 맞았다. 자궁이 이미 1cm가량 열렸다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록 도통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유도제를 맞은 지 2시간여 만에 출산이 진행되는 바람에 또 무통주사를 맞지 못했다. 남편은 “유도제를 맞지 않아야 회복도 빠르대”라며 진통 중인 내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남은 아파 죽겠는데. 합리화하는 남편이 때려주고 싶게 얄미웠던 기억이 난다.

이런 경험 탓인지 네번째임에도 여전히 출산은 두렵다. 한 번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옛날 아이 낳다가 그렇게들 많이 죽었다는데 진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전 세계 인구 절반이 여성, 그 중에 또 절반가량은 애를 낳기에 누구나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임신·출산은 여성에겐 정말 고되고 어려운 일이다.

나는 그래도 비교적 쉽게 임신하고 출산한 경우에 속한다. 임신 중 입덧도 전혀 없었고 약간의 빈혈이 있긴 했지만 비만, 임신성 고혈압, 당뇨 등 심각한 질환도 전혀 겪지 않았다. 셋째 임신 때는 조금 고생을 하긴 했다. 산달이 한여름이었는데 만삭기간 더위 탓에 피부질환과 질 내 염증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심각한 수준은 아니기에 회사를 일찍 쉴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려움 때문에 한 달여간 잠도 잘 못 자고 일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자녀가 있는 임신부는 뱃속 아이 돌보랴, 배 밖(?)의 아이 돌보랴 2배로 힘들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임신 중인 몸으로 아이들 운동회에 참석한 기자의 모습.

넷째를 임신한 요즘은 그동안의 임신에서 겪지 못한 새로운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바로 허리 통증이다. 치료를 받으러 갔더니 의사는 “세 아이를 낳고 키우며 누적된 게 오죽하겠느냐”고 했다. 하긴 임신기간 동안 내 몸무게의 4분의 1에 이르는 배를 달고 다닌 데다 출산 후엔 일하랴 아이들 바라지하랴 단 하루도 뒹굴거려 본 기억이 없다. 이제쯤 허리가 ‘아프다’고 아우성 칠 때도 됐다.

생전 내 돈 주고 병원이란 걸 거의 가 본 일 없는 ‘강골’이었는데. 요새는 매주 침을 맞기 위해 한의원에 간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잔심부름 시키는 일도 부쩍 늘었다. “엄마 리모컨 좀 갖다 줄래?” “코 풀어줄 테니 휴지 가져와.” “장난감 비닐은 부엌 분리수거함에 각자 알아서 넣으렴.”

이렇게 허리 움직임을 최소화하는데도 워킹맘의 신세인지라 집에서든 밖에서든 움직일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외가친척 모임에 참석했는데, 자녀들이 모두 초등학생인 사촌언니, 오빠들과 달리 나는 식사시간 내내 엉덩이를 5분 붙이기도 어려웠다. 아이 3명이 돌아가며 “쉬야가 마렵다” “스파게티가 더 먹고 싶다”(그 식당은 뷔페였다) “음식을 뱉었다”며 엄마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도 어김없이 허리를 붙잡고 드러눕고 말았다.

이번 임신 땐 유달리 배도 더 큰 느낌이다. 네 번의 임신을 겪으며 자궁도, 뱃살도 탄력을 잃었나 보다. 신랑도 “만삭되면 얼마나 더 커지는 것이냐”며 놀랄 정도니 단순한 착각은 아닌 듯하다. 조금만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고, 오래 앉아있으면 횡격막이 눌리는지 숨이 찬다. 차라리 서 있는 게 편해 대중교통에서 자리 양보를 받으면 외려 난감할 때도 있다.

나도 이럴진대 임신 기간 내내 입덧, 출혈에 조산 위험으로 몇 달을 누워 지낸다는 임신부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일부 보건소나 기관은 임신부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예비아빠들이나 임신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꼭 한 번 체험해보라 권하고 싶다. 휴대전화가 바닥에 떨어지면 전화 걱정보다는 몸을 굽혀 주울 생각에 한숨이 나고, 양말 하나를 신다가 호흡곤란이 발생하는 이유를 비임신부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단다. 많은 여성들은 그런 힘듦과 고통을 겪으며 한 생명을 잉태하고 세상에 내보내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나를 비롯한 모든 임신부들에게 응원과 경의의 박수를 보내본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