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혜 교수 ‘답도 건축물’ 논문 발표
구한말 조선을 이끈 고종은 답도에 새겨진 동물상을 통해 자신이 품은 염원을 표출했다. 주작, 말, 용 등 다양한 동물상을 배치해 조선의 번영 의지를 나타낸 경복궁 근정전의 답도①. 이 답도 중앙에는 봉황이②, 경복궁 집옥재에는 왕을 상징하는 용이③, 대한제국 황제로 등극한 환구단에는 법치주의를 상징하는 해치가 배치됐다④. 김성혜 교수 제공
경복궁의 법전인 근정전에는 무려 68마리의 동물상이 웅장하게 감싸고 있다. 검소함과 절제라는 유교 이념이 깃든 조선 시대의 이전 왕실 건축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1395년 경복궁이 처음 지어질 때와는 달리 고종이 재위한 시기인 1867년 중건되면서 이처럼 다양한 동물이 배치된 것이다.
김 교수는 궁궐 내 왕(황제)만이 지날 수 있는 계단 길인 답도(踏道)에 배치된 동물들을 연구했다. 근정전뿐 아니라 고종의 재위 기간 지어진 경복궁의 집옥재, 경운궁(덕수궁) 중화전, 환구단의 답도에 배치된 동물상에는 ‘독립’ ‘근대화’ ‘법치’라는 독특한 코드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근정전 앞 답도의 중앙에 새겨진 봉황은 모든 새의 으뜸이자 고귀하고 성스러운 기운을 나타내는 상징. 세도정치로 인해 무너진 왕권과 국력을 회복하겠다는 염원을 담아 새겨 넣은 조각상이다. 근정전에는 또한 왕실의 기운이 세상으로 퍼지길 기원한 사방신(四方神·청룡 백호 주작 현무)과 십이지(十二支) 동물도 새겨졌다. 김 교수는 “답도의 동물상은 단순한 조형미를 위한 게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의도를 담은 상징물”이라며 “근대화를 통해 자주 독립 국가를 꿈꾼 ‘고종의 다빈치 코드’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근대 왕실 건축물 가운데 가장 이색적인 동물 문양은 경복궁 집옥재 답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맞물리는 두 마리의 용이다. 용은 왕(황제)의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동물. 창덕궁 인정전, 경복궁 근정전 등의 답도 중앙에는 모두 봉황만이 배치됐지만, 집옥재에서 처음으로 용을 전면에 내세웠다. 1881년 창덕궁 경내에 지어진 후 1891년 현재의 경복궁 자리로 옮겨진 집옥재는 고종의 개인 서재이자 각국 공사들을 접견한 집무실이었다. 답도는 원래 법전이나 법문에만 설치됐지만 유일한 예외가 집옥재다.
김 교수는 “경복궁이 중건된 1860년대만 하더라도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영향력이 컸지만 1880년대 이후 고종이 본격적으로 실권을 잡았다”며 “집옥재 천장과 벽면에도 용 장식을 배치함으로써 왕권 강화의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환구단을 건설하고, 대한제국의 황제로 등극했다. 황제만이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공간인 환구단에는 그에 어울리는 상징물들이 필요했다. 환구단과 황궁우 사이에 놓인 삼문(三門)의 답도에 쌍룡(雙龍)과 해치 두 종류의 동물만을 배치한 것. 쌍룡은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동물이고, 해치는 시비곡직을 가리며 불의를 보면 뿔로 받아 물리친다는 법과 정의의 화신이다. 전제황권과 법치주의 국가를 지향한 고종의 뜻이 반영된 결과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