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수미 기자가 만난 C.E.O ‘72년 장수 기업’ 샘표식품 박진선 대표
《올해 창립 72주년을 맞은 샘표식품이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국내 간장 시장 1위를 점한 회사에서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상품은 간장이 아닌 ‘요리에센스 연두.’ 지난 21년간 샘표를 이끌어온 오너 3세 C.E.O 박진선 대표(67)가 남다른 경영 이야기와 세계를 향한 ‘우리맛 알리기’ 프로젝트에 대해 들려줬다.》
경력 40년 된 ‘설거지 베테랑’ 남편
“요리 학원에 다녔는데, 칼질이 너무 어려워 그만두었어요. 대신 설거지를 잘 해요. 경력 40년 된 베테랑이죠. 요리 강좌 마친 후 제가 설거지 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저희 직원들도 믿지 않더라고요(웃음).”
인터뷰 내내 박 대표는 참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잘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주앉은 상대까지 웃음이 나게 만들었다.
“공부할 때는 아니었던 것 같고,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저보고 많이 웃는다고 하더군요.”
미국에서 철학 교수로 일하다 경영인의 길로
박 대표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먼저 그는 공부하는 사람이었는데, 전혀 다른 두 개의 전공을 선택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 전자공학 석사에 이어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철학과 교수로 일했다. 1990년 아버지의 권유로 귀국했을 때 그는 “남다른 위기의식을 가졌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샘표식품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두 가지 목표를 잡았다. 첫째, R&D와 마케팅 중심 기업이 되는 것, 둘째,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기획이사로 입사해 회사 경영을 배우고 시장 상황도 분석한 그는 1997년 C.E.O로 선임된 후 R&D, 마케팅 조직의 인력을 키우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스페인 요리과학연구소와 함께 ‘연두 레시피’ 150여 가지 개발
“10년이 지나니, 이제는 뭔가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2년 저희 연구소에서 ‘연두’를 개발해냈죠. 콩 발효액으로 ‘요리에센스’라는 새로운 맛내기 제품군을 만든 겁니다. 연두에 대해 한마디로 얘기하면, 우리 간장의 맥을 이어나가면서도 맛, 냄새, 색깔 등을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업그레이드’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2007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요리과학연구소인 스페인 알리시아 연구소에 연두를 소개했고,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현재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음식에 적용할 수 있는 ‘연두 레시피’ 150여 가지가 개발돼 있는 상태.
미국 주류 소비자를 대상으로 프리미엄 시장 공략
서울 충무로 본사 10층 ‘샘표 헤리티지’ 공간에서 인터뷰에 응한 박진선 대표.이곳에는 샘표의 브랜드 로고 설치물, 72년 역사를 보여주는 샘표 간장들이 전시돼 있다.
“올해 안으로 미국 뉴욕에 ‘연두 스튜디오’를 열고 미국 시장을 적극 공략할 예정입니다. 이 곳에서는 연두를 활용한 요리 강좌, 새로운 요리법 제안, 식생활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거예요. 지난해 말부터 연두가 미국 프리미엄 마켓에 입점하고 있는데, 아시아 식품 진열대에 놓지 않으려고 해요. 미국 주류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연두’는 올해 3월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자연식품박람회’에서 전 세계 890여개 후보를 제치고 ‘차세대 혁신 제품상’을 받았다. 자연 발효, 무(無)합성첨가물, 논 지엠오(Non-GMO) 등 ‘클린 라벨’ 조건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맛이 훌륭하다는 면에서 혁신성을 인정받은 것.
요리 면접, 젓가락 면접으로도 이름나
박 대표는 2013년 300억원을 들여 충북 오송에 국내 최초의 발효 전문 연구소 ‘샘표우리발효연구중심’을 세웠다. ‘우리맛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올봄에는 서울 충무로 본사 1층에 ‘샘표 우리맛 공간’을 마련해 각종 세미나, 이벤트 등을 열고 있기도 하다.
샘표식품은 직원을 채용할 때 요리 면접, 젓가락 면접 등 독특한 면접으로 이름나 있다. 요리 면접은 4, 5명이 한 팀이 돼 주어진 음식재료로 테마를 정해 요리를 만들고 면접관들에게 특징을 설명하는 형식을 갖는다. 젓가락 면접은 동영상을 보고 열흘 동안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준 다음 진행된다.
“요리 면접은 ‘요리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과정을 통해 요리를 만드는지’ 보는 것이죠. 젓가락 면접 또한 ‘젓가락질을 얼마나 잘 하느냐’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라 ‘정성을 기울이는 태도’를 보는 겁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젓가락질을 고쳤어요. 면접을 하면서 보니, 나이 들어 젓가락질 고치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2014년 여성가족부에서 인증하는 ‘가족친화기업’으로 선정된 샘표식품에는 ‘칼퇴근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1박2일로 여행을 떠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 호응이 높다.
글/계수미 기자 soomee@donga.com
사진/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동아일보 골든걸 goldengir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