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6·12회담 본궤도]뉴욕서 마주앉는 김영철-폼페이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72)은 1990년대 한 남북 회담장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빨치산이나 당 간부 집안 출신이 아닌 그가 1962년 군에 들어와 30년 넘게 대남 업무에 매달린 끝에 북측 협상 대표로 나온 감회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55)의 감회도 남다를 것 같다. 지난해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거쳐 국무장관에 오른 트럼프 행정부의 ‘신데렐라’로서 18년 만에 북한 고위급의 미국행을 이끌어냈다. 전직 정보 수장 출신으로 비핵화 논의를 이끌다 31일 뉴욕 ‘핵 담판’에서 마주하는 김영철과 폼페이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길을 걸어왔다.
김영철의 출신 성분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1962년 인민군 15사단 비무장지대(DMZ) 민경중대 근무로 군과 대남 업무를 시작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김영철의 출신 성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건 그가 부하로 데리고 있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과의 관계로 유추할 수 있다. 정부 소식통은 “리선권은 ‘김영철의 오른팔’로 알려져 있지만 회담장에서 보면 김영철이 리선권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일정 선을 지킨다. 리선권 집안 배경이 김영철보다 좋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대북 전문매체인 38노스는 29일(현지 시간) 김영철의 ‘전기(biography)’를 소개하며 “1960, 70년대 김씨 일가의 근접 경호원으로 일했다”고 전했다. 38노스는 이어 “김영철은 일종의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심지어 여러 외국어를 능숙히 한다”고도 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김영철은 정점으로 올라서기 위해 강경노선을 타며 온갖 경쟁자를 제쳐야 했다. 정찰총국장 시절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것도 내부 권력투쟁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했던 목적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폼페이오는 상대적으로 탄탄한 엘리트 코스를 거치며 ‘출세 사다리’를 탔다.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대위까지 복무한 뒤 세계 최고의 명문인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하버드로리뷰’라는 법률지 편집장을 지냈는데 하버드대 로스쿨 학생 중에서도 극히 일부가 로리뷰 입성이 허락되고 그중에서도 편집장은 최고로 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바로 흑인 최초의 하버드로리뷰 편집장이다.
그는 변호사, 사업을 하다 2010년 캔자스주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내리 4선을 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군 출신에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면 워싱턴 정계에서도 최고의 자격이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스펙’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 두 정보 수장 출신의 커리어 건 ‘뉴욕 회담’
이런 김영철과 폼페이오는 31일 만나 최소 1박 2일 동안 접촉하며 김정은과 트럼프를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탑승시키는 ‘티켓 발권’(비핵화 합의)을 위해 총력전을 편다. 폼페이오가 3월 말과 9일 평양을 찾은 만큼 서로에 대한 탐색전은 어느 정도 마쳤다. 2차 평양 방문 때 폼페이오는 김영철을 “훌륭한 파트너”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난주 ‘회담 취소와 번복’의 롤러코스터를 감안하면 안심하긴 어렵다.
대남 업무를 50년 넘게 해온 김영철과 변호사-의원-CIA 국장을 거친 폼페이오는 협상이라면 각 분야에서 어느 정도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김영철은 협상장에서 고함을 치다가도 어느새 다가와 속삭이며 상대를 갖고 논다”는 건 정부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라이트 연구원은 “(폼페이오는) 매우 강경하지만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도 건설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평이 있다”면서 “(장관 인준 때는 통과를 위해) 오랜 정적인 힐러리 클린턴과 존 케리 전 국무장관에게까지 손을 내밀었을 정도”라고 평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