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도쿄 특파원
“연애는 안 하고 있어요. 그냥 한두 번 밥 먹고 차 마시고 헤어져요.”
A는 “귀찮기도 하고 시간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연애를 못 할 정도로 바쁜 것은 아니었다. 평일 A의 귀가 시간은 보통 오후 7시. 왼손엔 편의점 도시락, 오른손엔 대여점에서 빌린 영화 DVD를 쥐고 귀가해 저녁을 먹으며 영화를 본다. 가끔 해외여행을 가는 것 외에는 주말에도 집에 있는다고 했다. 연애는커녕 주변 사람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편이다.
닌텐독스는 게임 회사 ‘닌텐도’가 만든 애완동물 육성 게임이다. 게임기 화면을 열면 귀여운 애완동물이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화면 앞에서 애교를 부린다. 그러나 전원을 끄면 사라진다. 자신이 원할 때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애완동물을 키우기 부담스러운 사람들 중에 이 게임을 즐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진지한 관계는 ‘노(No)’이지만 외로울 때 한두 번 만나 밥 먹는 것은 ‘예스(Yes)’인 일본 젊은 세대의 연애 방식이 마치 닌텐독스를 하는 것 같다. 왜 사람 간의 교제를 꺼리는 걸까. A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 만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요. 나도 상대에게 폐 끼치기도 싫고요.”
일본의 미혼율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여기에 다른 사람들과 접촉마저 하지 않으려는 움직임까지 더해지고 있다. 동네 작은 라멘 가게에서도 주문을 사람(점원) 아닌, 자동판매기를 통해 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점원은 아무 말 없이 주문된 음식만 가져다줄 뿐이다. 인력 부족으로 로봇이 서빙을 하고 커피를 만드는 카페도 늘고 있다. 접촉을 뜻하는 ‘콘택트(Contact)’의 반대, ‘언택트(Untact)’ 사회의 도래다.
최근엔 언택트 사회의 ‘끝판왕’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죽음마저도 남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생을 마감하기 전 일부러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NHK는 이렇게 ‘증발’된 신원 불명의 사망자가 2만 명에 이른다고 일본 경찰청의 통계를 인용해 얼마 전 보도했다. 일본 사회학자 아마다 조스케(天田城介) 주오(中央)대 교수는 “마지막까지 (남과) 접촉하지 않으려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은 참을 수 있지만 관계를 맺을 때 느끼는 긴장감과 피로감은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세대가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출몰’하고 있다. 그 끝엔 과연 어떤 세상이 있는 걸까. 그 세상에서의 ‘쓸쓸한 퇴장’까지도 혼자 견뎌낼 수 있을까.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