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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의 뫔길]오현스님의 노망

입력 | 2018-05-31 03:00:00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거화(擧火)”,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

26일 입적한 신흥사 조실(祖室) 오현 스님의 법구를 안치한 장작더미에서 마침내 불길이 하늘로 치솟자 “아미타불” “불법승(佛法僧)”을 외치는 목소리가 다비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아이고! 스님” 하는 오열도 터져 나왔습니다.

영원한 수행자이자 거리낌 없는 자유인의 삶을 추구하던 스님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다비식이 30일 오후 금강산 자락의 최북단 사찰인 강원 고성군 건봉사 연화대에서 치러졌습니다. 이날 오전 강원 속초 신흥사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 총무원장 설정 스님 등 10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조계종의 가장 ‘젊은 스님’이 영원한 자유로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시나브로 사그라지는 불꽃을 보면서 젊은 스님 오현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4년 전 스님으로부터 뜻밖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노망이 들어 무문관(無門關)에 있습니다. 금족 생활을 하기 때문에 전화 못 받습니다. 3개월 보내고 해제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사즉생(死則生)의 의미를 담은 무문관. 82세의 스님은 노망이라는 단어로 수줍음을 감춘 채 그 길을 택했습니다. 스님의 노망은 계속됐고, 해제일은 시인묵객과 도반이 모이는 축제의 자리가 됐습니다.

강원 고성군 건봉사 연화대에서 30일 치러진 오현 스님의 다비식.


그로부터 한 해 뒤 스님의 동안거 해제 법문을 다른 분을 통해 귀동냥했습니다. 스님은 진리를 찾을 것을 강조하면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Stay foolish, Stay hungry!”를 언급했습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마음의 소리를 찾아 길을 떠나고, 남들의 좋은 것은 가슴에 꼭 담아 두는 스님은 누구보다 젊었습니다.

조계종의 가장 진솔한 스님이 떠났습니다!

2013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때였죠.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밥이나 먹자”는 스님의 전화가 있었습니다. 흥이 나셨는지 2시간 반에 걸쳐 불교는 물론이고 온갖 분야에 대한 즉석법문의 상이 차려졌습니다. 그런 뒤 기자의 얼굴이 딱했는지 “그래, (인터뷰) 하자, 사진도 찍자”고 했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정상에 오른 이가 산의 초입에서 얼쩡거리는 등산객에게 전하는 것처럼 귀에 쏙 들어옵니다. 그 솔직한 문답은 가도 가도 목적지가 나오지 않는 ‘바로 저기’라는 식의 훈수가 아님을 확신하게 만들었습니다.

―불교가 어렵다는 이가 많습니다.

“부처님 법문은 우리 속담에 다 있어. 내가 보기에 팔만대장경을 몇 마디로 요약하면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지 마라’ ‘사람 차별하지 마라’ 이거 아니겠나. 얼마나 훌륭한 말이야. 이렇게 살면 세상 잘 돌아간다. 경전 밤낮 달달 외워서 얻어지는 게 깨달음이라면 천지에 깨달은 자들이야. 그럼 세상이 이 꼴이겠나?”

조계종의 평등한 눈의 스님이 떠났습니다!

일각에서는 정치판에 빗대어 스님을 ‘강원도의 맹주’라고 합니다. 한때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신흥사를 제대로 된 절집으로 다시 세우려면 적지 않은 정치력과 힘이 필요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힘은 철저하게 공적인 가치를 위한 것이었고, 스님 스스로는 유력 인사뿐 아니라 마을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기는 평등한 눈의 소유자였습니다.

스님은 입적 전 만해마을 심우장에서 남긴 메모 형식의 유언장에서 “내가 죽으면 시체는 가까운 병원에 기증하고 병원에서 받지 않으면 화장해서 흩뿌려라”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장례는 용대리 주민장으로 끝내고 비용은 전액 신흥사, 낙산사, 백담사에서 부담하라” “염불도 하지 말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공교롭습니다. 스님이 대자유의 여행을 떠난 요즘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은 누란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성폭력과 도박, 폭력, 은처자 등 사회에서도 지탄받아 마땅한 의혹들이 종단의 큰스님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옥석을 가려야 하고, 침소봉대가 있을 수 있지만 의혹의 꼬리만으로도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스님의 방하착(放下着)이 얼마나 힘들고 큰 것인지 새삼 느낍니다. 스님의 노망이 그립습니다. 용케 마지막 기운을 내는 불꽃을 보면서 스님의 ‘내가 죽어보는 날’을 읊조려 봅니다.



부음을 받는 날은

내가 죽어보는 날이다



널 하나 짜서 그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죽은 이를

잠시 생각하다가

이날 평생 걸어왔던 그 길을

돌아보고 그 길에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

그 길에서 헤어졌던 그 많은 사람

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

나에게 꽃을 던지는 사람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는 사람

아직도 내 마음을 붙잡고 있는 사람

그 많은 얼굴들을 바라보다가



화장장 아궁이와 푸른 연기,

뼛가루도 뿌려본다 ―고성 건봉사에서
 
김갑식 문화부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