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참가국이지만 최근 논의에서 소외돼 있었던 러시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르게이 라브노프 외무장관은 31일 러시아 외무장관으로는 2009년 이후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리용호 외무상과 회담을 가졌다. 한 외교 관계자는 “5월 3일 평양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라브노프를 접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라브노프 외무장관은 리 외무상과 회담한 뒤 “대북 제재가 풀리기 전까지 한반도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며 “(북한) 비핵화를 한 번에 보장하는 건 불가능하다. 몇 번의 단계를 거쳐야 하고, 각각의 단계에 따른 거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일괄 타결에 맞선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다.
극동 개발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4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남북러 삼각 협력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이 사업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이는 경제 우선 노선을 내세운 김 위원장과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어서 향후 논의가 급진전 될 수 있다.
다만 러시아는 평화협정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지난달 29일 “판문점 선언에서 다룬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이행 문제에 러시아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여기에는 구소련이 6·25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역사적 배경도 담겨 있다. 당분간 러시아는 대북 문제에 있어 중국과 공조할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전쟁 반대, 동북아에서의 미국 영향력 확대 견제, 한반도 비핵화라는 3대 목표가 중국과 같기 때문이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