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사회적기업 만들자]<상>서울시의 ‘그라민은행’ 사회투자기금
장애인 고용이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기업 ‘베어베터’ 이진희 대표(오른쪽)와 발달장애인 직원 김경민 씨(가운데), 곽광채 씨(왼쪽)가 직접 만든 쿠키가 담긴 상자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사회적기업의 ‘그라민 은행’
2012년 설립된 ‘녹색친구들’은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월세로 내느라 목돈 마련이 쉽지 않은 20, 30대를 위해 임대료가 싼 임대주택을 짓고자 했다. 출퇴근하는 데 1시간 반 안팎이 걸리는 서울 외곽이 아니라 도심 역세권에 짓고 싶었다. 문제는 땅도, 돈도 없다는 것. 저소득 청년 주거문제 해결이라는 취지는 좋았지만, 담보는 없고 신용도 모자라는 사회적기업에 선뜻 거액을 빌려줄 금융기관은 없었다.
녹색친구들은 서울시 문을 두드렸다. 때마침 시는 시중 은행 대출이 어려운 소규모 사회적기업을 위한 사회투자기금을 조성하고 있었다. 빈민에게 담보 없이 소액대출을 해주는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과 비슷하다. 금리도 연 3% 이하다.
이들은 이 종잣돈을 토대로 2016년 마포구 성산동에 사회적 임대주택(사회주택) 1호점, 11가구를 분양했다. 이어 서대문구 창천동과 관악구 행운동에 각각 2, 3호점을 지었다. 소득이 도시근로자의 월평균 중위소득 70% 이하인 청년들이 입주했다.
김종식 녹색친구들 대표는 “시중 은행은 총 건축비의 30% 이상이 있어야 대출해주는데 우린 그런 돈이 없었다. 시가 우리의 가치를 믿고 투자해줘서 저소득 청년들이 싸고 좋은 집을 얻었다”고 말했다.
직원 240명 가운데 200명이 발달장애인인 ‘베어베터’도 사회투자기금 혜택을 받은 사회적기업이다. 2012년 회사를 만들면서 발달장애인 51명을 고용했다. 이들에게 인쇄기술을 알려주고 명함, 달력을 비롯한 인쇄물을 제작했다.
발달장애인 고용을 더 늘리기 위해 이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는 제과업에 도전했다. 이를 위해서는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시설을 갖춰야 했다. 사회투자기금 8억 원을 융자받았다. 이진희 대표는 “시중 은행이 보면 대출금도 갚을 수 없는 사회적기업을 키우려면 법인세, 소득세 감면보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도록 사회투자기금이나 고용연계제도 같은 것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까지 조성된 사회투자기금은 약 675억 원이다. 시에서 552억 원, 9개 위탁운용기관에서 123억 원을 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녹색친구들, 베어베터 말고도 낡은 고시원을 리모델링해 청년 주거환경 개선에 쓰는 선랩건축사사무소, 탈북민 정착을 돕는 커피창고 등의 사회적기업에 331건, 642억 원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일자리 1851개가 생겼고, 381가구가 사회주택에서 살게 됐다.
원리금 상환은 순조롭다. 현재 연체된 금액은 사회적기업 1곳, 1억6000만 원뿐이다. 상환은 분기별로 갚거나, 사회주택 같은 경우는 임대계약이 체결되면 35%를 상환하고 나머지는 5년간 갚는다. 노수임 서울시 사회적경제정책과 팀장은 “돈을 갚아야 하는 사회투자기금은 사회적기업 운영의 유연성과 책임감을 높여 회수율이 높다”며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기존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기 어려워 도전해보지도 못하는 사회적기업을 위해서는 이 같은 ‘사회적 금융’도 성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