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서도 ‘젊은 꼰대’가 주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KBS 드라마 ‘라디오 로맨스’의 진태리(유라·왼쪽)는 자신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 후배 배우를 기어이 찾아가 ‘꼰대질’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KBS 캡처
후배 숨이 턱 막히게 하는 말. 후배를 이해하려는 의지라고는 없는 꽉 막힌 부장이 했을 법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의 주인공은 20대 여성. 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라디오 로맨스’에서 진태리(유라 역)가 후배에게 쏘아붙인 대사다. 극 중 진태리는 28살이다.
선생님, 아버지, 간부급 상사 등 기성세대로 향했던 ‘꼰대’ 딱지붙이기의 대상이 젊어지고 있다. 꼰대는 자신의 생각이 무조건 옳다며 간섭과 지적, 충고를 일삼으면서 권위와 서열을 강조하는 기성세대를 비꼰 표현. 최근에는 이런 행태를 답습하는 2030세대는 물론 청소년에게도 ‘꼰대’ 딱지가 붙을 만큼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이들을 가리켜 ‘젊꼰(젊은 꼰대)’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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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30%를 넘긴 KBS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의 최문식(김권)은 젊꼰의 대표선수다. 스물일곱에 팀장 자리에 올라 부하 직원에게 “넌 평생 내 밑에 있을테니 시키는 대로 해”라며 막말을 쏟아 붓는다. 올해 영화로도 제작된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의 김상철도 마찬가지. “후배가 선배한테 먼저 인사해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는 “난 멋진 선배”라며 자평한다. 순끼 작가는 “어디에나 한 명씩은 꼭 있을 법한 인물”이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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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도 젊꼰에 대한 비판은 거세지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간호사 김동은 씨(가명·25·여)는 양치질을 하던 중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 선배보다 먼저 입을 헹구었다가 버릇없다는 지적을 받은 경험을 털어놓았다. 김 씨는 “수간호사 등 고참 간호사보다 1,2년 위인 선배의 꼰대질이 더 심하다”며 “진료 차트로 머리를 때리거나 쿡쿡 찌르는 건 기본”이라고 한탄했다.
대학가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꼰대 선배의 만행을 꼬집는 일이 확산되고 있다. “17학번 대학생이 ‘요즘 18학번들이 선배에게 기어오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젊꼰으로 낙인찍힐까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젊은 세대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교사 박준혁 씨(가명·28)는 “꼰대 소리를 들을까봐 당연히 나눠서 해야 할 일인데도 선뜻 후배에게 맡기기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 “ ‘젊꼰’ 현상은 강한 서열의식과 뿌리 깊은 차별에서 비롯” ▼
“공감과 협력보다는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가 젊은 꼰대를 양산하는 ‘꼰대의 조로(早老)현상’을 일으킨 주범이죠.”
지난해 11월 출간한 ‘꼰대의 발견’(인물과 사상사)을 통해 한국 사회 특유의 꼰대 문화를 분석한 아거(필명) 작가. 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최근 등장한 ‘젊은 꼰대’를 비꼬는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라고 해석했다.
“과거에도 1, 2년 선배가 후배에게 막말을 하거나 훈계하는 모습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나이나 직급으로 자신을 찍어 내리거나 사생활을 간섭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했죠. 일상에서의 민주화가 확산되면서 ‘젊꼰’을 비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젊꼰’ 현상은 강한 서열의식과 뿌리 깊은 차별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꼰대 행태를 보면 나이나 학번 뿐 아니라 사는 지역, 부모의 직업 등 세분화된 기준으로 상대방을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어릴 때부터 성적과 재산에 따라 서열이 나뉘는 현상에 젖어든 이들이 ‘젊꼰’으로 변하게 된 겁니다.”
아거 작가는 한국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능력주의’의 변질인 ‘능력 지상주의’가 꼰대 문화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한다고 일갈했다.
꼰대 현상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보다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꼰대짓은 하는 대상은 아랫사람입니다. 결국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야만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돈이 많거나 공부를 잘하면 권력이 생긴다’는 의식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