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중조우의교. 동아일보DB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김정일과 김일성대를 다녔던 한 전직 베이징대 교수는 수년 전 특파원 시절 기자에게 “북한의 핵실험에도 중국이 소극적인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미국에 의탁, 투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미국의 안전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 때문인데 북한이 미국과 ‘직거래’하면 안보 전략적 중요성이 없어져 버리는, 중국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6차례 핵실험을 하며 핵무력을 완성해 갈 때 중국은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만큼의 제재에 나서기보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미가 나서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안보 위협 때문에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있으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미국이 풀어야 한다는 논리도 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나서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12년 집권 이후 외면해 온 김 위원장을 한 달여 만에 두 번이나 만났다. 중국은 북핵 저지를 위한 ‘중국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 ‘북-미 해결론’을 폈으나 ‘차이나 패싱’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김정은이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다 중국으로 달려간 것도 트럼프 정부가 ‘무장 해제’ 수준의 비핵화를 요구하자 안보 보험용으로 손을 내민 형국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보험이다.
시 주석이 지난달 7일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서 김정은을 두 번째 만났을 때 “조중(북-중) 두 나라는 운명공동체, 변함없는 순치(脣齒·입술과 이)의 관계”라고 강조했다. 6·25 때 긴급 구원에 나선 것을 떠올리게 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중 간 ‘혈맹’이나 ‘순치’ 관계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 등 주로 중국 지도자들이 북-중 관계에서 튕겨 나가려는 북한을 잡을 때 썼다.
1980년대 후반 냉전 구도가 해체되고 동구의 사회주의 형제 국가들이 잇따라 친서방 국가로 회귀해 북한은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갔다. 1990년 러시아에 이어 1992년 중국마저 한국과 수교하자 북한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이때 북-중 순치 관계는 사실상 끝났다는 분석이 많다.
더욱이 핵과 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중국이 점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대국의 책임을 명분으로 제재 강도를 높이자 북-중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중국 내에서 ‘핵개발하는 북한과 중국은 더 이상 동맹이 아니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이어졌다. 1962년 북-중 상호원조조약에서 전쟁 발생 시 ‘자동 개입’ 의무도 핵을 개발하는 북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논리도 제시됐다. 북한이 반발한 것은 물론이다.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서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북한과의 동맹’은 거추장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았다. 이제 북한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자 중국과의 ‘혈맹’ ‘순치’ 관계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두 번째로 시 주석을 만나고 오자 트럼프 대통령이 쌍심지를 켜고 ‘시 주석을 만나고 오더니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중국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이제는 중국이 북한의 배신을 우려하고 있다.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