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영철 백악관 회동]72세 동갑내기 北손님 환대
두손 모은 김영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온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오른쪽)과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전용 책상 의자에 앉아 있고, 김영철은 맞은편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김영철 옆은 백악관이 북한 외무성 통역요원이라고 신원을 공개한 김주성. 백악관 제공
오후 1시 12분 오벌오피스(대통령 집무실)가 있는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 멈춰 선 검은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 김 부위원장이 조용히 하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건물 밖에 나와 기다리던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정중히 영접한 뒤 트럼프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는 오벌오피스로 안내했다. 김 부위원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지난달 30, 31일 뉴욕 고위급 회담에 동석했던 앤드루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KMC) 센터장, 마크 램버트 국무부 한국과장도 건물 안으로 함께 이동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면담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약 90분간 진행됐다. 2000년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45분 동안 만났던 것에 비해 면담 시간이 2배가량으로 늘어난 것이다.
면담이 마무리된 뒤 백악관은 면담 장면을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다. 김 부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뒤 집무실 책상에 마주 앉아 대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부위원장이 들고온 친서를 개봉해 보기도 전에 “특별한 전달이다. 아직 읽진 않았지만 매우 기분이 좋고 흥미롭다”며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면담 자리에는 켈리 비서실장과 폼페이오 장관이 배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 김 부위원장 측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고 여겨지는 대북 강경파 인사들은 배석시키지 않았다. 특히 국가안보회의(NSC) 사령탑인 볼턴 보좌관의 면담 불참은 이례적이다. 경색 국면에서 북한과 갈등을 벌인 인사들을 전략적으로 배제해 미 정부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핵 폐기 확인 후에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리비아 모델’을 주장해 지난달 16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에서 집중 공격 대상이 된 바 있다. 펜스 부통령 역시 지난달 21일 방송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 합의에 동의하지 않으면 북한도 리비아 모델처럼 끝장날 수 있다”고 발언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담화로 반격했었다.
면담이 종료된 뒤 집무동을 걸어 나오면서도 대화가 이어졌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김 부위원장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집무실을 빠져나와 이야기를 이어가던 트럼프 대통령은 환한 표정으로 김 부위원장을 바라보며 팔과 어깨를 한동안 수차례 가볍게 두드렸다. 면담을 통해 형성된 친밀감이 느껴졌다. 김 부위원장도 손짓을 더해 밝은 표정으로 화답하는 모습이었다.
김 부위원장은 백악관 면담을 마치고 1일 오후 9시경 뉴욕의 숙소로 돌아와 다음 날 귀국길에 올랐다. 3일 오후 8시경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그는 공항에서 잠시 중국 대외연락부 관계자를 만난 뒤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와 함께 대사관으로 향했다. 4일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워싱턴=박정훈 / 베이징=정동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