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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윤종]출산율 1.0 이하면 ‘체제 붕괴’수준

입력 | 2018-06-04 03:00:00


김윤종 정책사회부 기자

“정말 큰일이에요. 큰일…. 그런데 솔직히 말해 ‘한 방’은 없습니다.”

최근 만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3월 발표하기로 했던 저출산 대책이 계속 미뤄진 이유에 대한 해명이자, 저출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방법은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답답함, 아니 ‘절망감’마저 배어있는 말투였다.

실제 올해 신생아 수 감소는 매우 심각하다. 지난달 초 위원회는 초비상이 걸렸다. 4월 선천성대사 이상 검사를 받은 출생아로 신생아 수를 추산해보니 전년 동월보다 15% 이상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 검사는 모든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받기 때문에 출생아 수와 거의 같다. 더구나 이미 1월 ―8.0%, 2월 ―9.8%, 3월 ―9.6% 등 전년 동월 대비 신생아 수가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위원회는 부리나케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에 의뢰해 올해 신생아 수를 추산했다. 결과는 31만 명. 지난해 신생아 수는 처음으로 40만 명대가 붕괴된 ‘35만 명’이었다. 이 추세면 내년엔 신생아 수가 20만 명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만 14∼49세의 여성 중 가임(可姙)기간에 낳은 자녀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이 연간 1.0명 이하로 추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생긴다. ‘1.0명 이하’의 의미가 잘 와 닿지 않는다면 역사를 보자.

1992년 옛 소비에트연방(소련)이 무너지면서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워지자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로 떨어졌다. 1990년 독일 통일로, 동독은 사회가 어수선해졌고 자국민에게 제공하던 각종 복지가 사라지면서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로 떨어졌다.

‘합계출산율 1.0명 이하’는 말 그대로 체제가 붕괴될 때나 등장하는 수치다. 이 정도가 되면 젊은이들 사이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을 당연시해 저출산이 더욱 가속화된다. 보사연 이상림 부연구위원은 “합계출산율 1.0명 이하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이 사는 세상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맞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저출산 문제를 이야기하면 “취업도 못해 내 코가 석자다. 왜 출산, 나아가 국가를 걱정해야 되나”고 반문한다.

절망스럽지만 여기에도 ‘해답’이 있다고 본다. 지난 10여 년간 저출산 극복에 100조 원 이상의 재정이 투입됐다. 직접적으로 출산을 지원해 아이를 더 낳게 하는 정책이 대부분이었다. 즉 정부가 목표 출산율을 정하고 그 목표대로 신생아 수를 늘려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책철학이 담겨 있었다. 근데 효과는 미미했다.

이젠 ‘출산’으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출산이 저절로 이뤄지게 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6월 발표될 정부의 새 저출산 정책은 단기 성과보다는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된 원인을 정밀 분석하고 이를 개선해 어떻게 저출산을 극복할지에 대한 장기적 안목을 제시하길 바란다.
 
김윤종 정책사회부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