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독일인 헨델의 영국
헨델이 오라토리오 ‘메시아’로 대성공을 거두며 재기한 런던 코번트가든 왕립오페라극장. 사진 출처 코번트가든 왕립오페라극장 홈페이지
국경을 넘나든 코즈모폴리턴으로, 통속적인 오페라부터 천상의 오라토리오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했다.
이발사이자 외과의사였던 헨델의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걱정하며 유언을 남겼다. “법률가가 돼 집안을 일으킬 것.” 당시 독일에서는 궁전, 교회 등 제한된 공간에서만 음악이 연주돼 일자리가 부족했고 음악가의 삶도 고단했다.
선조 음악가만 55명에 이르는 ‘음악계의 금수저’ 바흐와 달리 오직 실력으로 승부해야 했던 헨델은 늘 새로운 길을 찾았다. 법학과를 중퇴하고 함부르크로 이동해 음악가로서 경력을 쌓아 오페라의 중심지, 이탈리아로 향한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독일로 금의환향한다. 20대 중반 하노버 궁정 음악 지휘자가 됐지만 더 큰 시장에 도전했다.
국제 정세에 밝았던 헨델이 주목한 곳은 유럽 음악의 변방인 영국. 경제가 급성장하며 오페라에 대한 수요가 늘었지만 음악가는 부족했다. 영국 왕실과 상류층의 취향을 간파한 헨델은 영국 왕립음악원을 창설하고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를 초청해 문화 시장을 키운다.
기적적으로 완치된 헨델은 오라토리오에 도전한다. 24일 만에 완성한 ‘메시아’의 초연은 1742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소박하게 이뤄졌다. 고난을 이기고 부활의 환희를 경험한 50대 후반 예술가의 삶이 투영돼 감동은 더 컸다. 런던 코번트가든 왕립오페라극장에서 국왕 조지 2세와 관객들의 열광적인 기립 박수를 받는다. ‘할렐루야’로 시작하는 절정에는 청중이 기립해 듣는 것이 전통이 됐고 지금도 크리스마스 즈음에 많이 연주되는 인기곡이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