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스피치 억제법 2년된 날… 극우, 가와사키市서 모임 추진 시민-단체 600여명 출입구 봉쇄… ‘한국인 존중’ 등 피켓들고 규탄
가와사키=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3일 오후 2시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의 교육문화회관 앞에선 출입구를 메운 600여 명이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들은 ‘인종차별은 죄’ ‘부끄러운 줄 알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외국인을 차별하지 말아요’나 ‘한국인도 존중합시다’ 등의 한글 피켓도 있었다.
같은 시간 이 건물 4층에서는 일본 우익단체 ‘헤이트스피치를 생각하는 모임’이 강연회를 열 예정이었다. 이들의 헤이트스피치(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 발언)는 대부분 한국인, 재일교포 등을 겨냥하고 있다.
○ 강연회 표방한 집회…저지당한 日 우익
가와사키=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시위자들은 “강연회로 위장해 우익 집회를 열고 헤이트스피치를 조장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더 격렬히 항의했다. 오후 3시가 되자 결국 강연이 취소됐다. 건물 안에 있던 우익단체 관계자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시위자들은 “꼼수 부리지 말고 집에 가라”며 야유를 퍼부었다. 세토 씨는 강연회 취소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폭력으로 강연회가 중단됐다. 주동자에게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시위에 참가한 고등학교 교사 마에다 사쓰키 씨는 “우익단체의 강연을 허가한 가와사키시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와사키시는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헤이트스피치의 사전규제를 처음으로 마련한 곳이다. 이번 강연회를 규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가와사키시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내부에서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12월 일본 내각부 여론조사(전국 18세 이상 남녀 3000명 대상 실시)에 따르면 헤이트스피치를 알고 있는 응답자(57.4%) 중 47.4%가 ‘(헤이트스피치로) 일본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다’고 답했다. ‘헤이트스피치가 표현의 자유’라는 응답은 17%에 그쳤다.
헤이트스피치 억제법 시행 이후 혐한 시위가 다소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근절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법 내에 처벌 조항이 없어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가두시위 등 직접적인 방법 이외에 최근에는 교묘한 방식으로 포장한 헤이트스피치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다. 한류 스타들의 소식을 전하는 연예 잡지의 경우에도 겉보기에는 평범한 한류 관련 잡지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범죄를 저지른 한국 연예인 모음’ 등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경우도 있다. ‘반일(反日) 발언 연예인 모음’을 모아 소개하는 기사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헤이트스피치 억제법을 발의했던 아리타 요시후(有田芳生) 참의원 의원(입헌민주당)은 “아직도 ‘조선인 차별’을 외쳤던 일제강점기 때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우익이 적지 않다”며 “이들이 아베 신조 정권을 지지하며 세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